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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지혜란 생명의 원천을 알아보는 눈이다.
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4-12-13 조회수95 추천수3 반대(1) 신고

 

 

 

 

 

  

 

 

2024년 다해 대림 제2주간 금요일 

 

 

 

<지혜란 생명의 원천을 알아보는 눈이다>

 

 

 

복음: 마태오 18,12-14

 

 

 


LORENZETTI, Pietro 작, (1325)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말씀에 꿈쩍도 하지 않는 세대를 비판하십니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마태 11,17)

    왜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을까요?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원하기는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에 묶여있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무엇에 묶일까요? 자신을 생존하게 해 줄 무언가를 줄 수 있다고 믿기에 묶이는 것입니다. 사람의 모든 선택은 다 자기 생존을 위함입니다. 

 

 

    저는 정치 이야기는 최소한만 하려고 하지만, 워낙 지금의 이슈가 이것이기에 그 상황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특별히 여당을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에 밤에 계엄령 무효화를 위해 회의를 개최했을 때 그들은 국회로 모이려고 했다고 금방 말을 바꿔서 당사로 모이기로 하였습니다. 이 말은 회의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국민의 대다수는 계엄선포가 옳지 않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국민의 뜻보다는 당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지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마태 11,19)

    지혜는 그들이 옳지 않았음을 드러내었습니다. 대통령 탄핵과 영부인 특검도 안철수 의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표결을 거부하고 나가버렸습니다. 그들을 뽑아준 국민 중 많은 수는 답답했을 것입니다. 그중에 어떤 여당 의원은 1년이면 또 자신들을 뽑아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동료 의원에게 말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서서히 분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여당의 씨가 마를 것 같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속속 자신들은 탄핵에 찬성하겠다고 하는 여당 의원이 늘어납니다. 왜 그 이전에는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요? 

 

 

    사람들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시야가 좁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는 다른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욕망은 우리 시야를 좁힙니다. 그러나 지혜가 드러나는 것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결과를 미리 내다볼 줄 아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지혜가 이룬 일”은 결과를 나타냅니다. 

    과정만 봐서는 어떤 선택이 진리인지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랬습니다. 사람들은 지혜가 없기에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하고 말하고 아드님께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했습니다. 과정만 가지고 말하면 헛갈립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전두환 씨가 쿠테타와 5.18만 빼면 정치를 잘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의 목숨을 잃게 만드는 결정을 한 사람임에도 과정만 보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가 어떤 벌을 받았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리를 알아볼 방법은 무엇일까요? 사람은 다 어딘가에는 속해야 합니다. ‘힘’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힘이 없으면 죽습니다. 다시 말해 모든 선택이 다 생존을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의 원천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지혜입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대통령이나 당의 사람들이 그 힘의 원천이라 믿으면 시력을 잃게 됩니다. 지혜를 잃게 됩니다. 그리고 안 좋은 결과를 맞게 됩니다. 민주주의에서는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옵니다. 국민의 눈치를 보았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생명의 원천은 어린이들이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생명의 원천이 어머니임을 압니다. 그래서 어머니 말에 웃고 울고 춤을 춥니다. 저도 어렸을 때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라는 국민교육 헌장을 외우며 머리를 갸우뚱했던 적이 있습니다. 

    ‘뭔 소리야. 나라가 나를 만들었나? 쳇!’

    나라와 어머니의 말 중 누구의 말을 들었을까요? 당연히 나에게 생명을 준 이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이제 생명의 원천이 자기 자신이 됩니다. 자신이 돈을 벌고 아기를 낳고 명예를 얻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관련되고 그렇게 원천을 잊으니 그것들이 나오는 회사나 정당, 모임 등에 소속하게 되고 그 뜻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정치인들이나 우리 모두 성 토마스 모어를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헨리 8세에게 신임받는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헨리 8세가 재혼하기 위해 교황청을 저버리자 헨리 8세에게 더는 순종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에게 생명을 주는 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단두대에 끌려가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까지 자유로웠습니다. 생명의 원천을 알고 그분의 말씀에 춤출 준비가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번 계엄에도 일부 군인들은 시민들의 안전을 우선으로 해서 명령에 따르지 않기도 했습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명심하는 정치인들이 많이 생기고 모든 생명의 근원은 하느님뿐임을 아는 신앙인들이 많아져야 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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