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주님은 나의 빛 “루멘채치스(Lumen Ca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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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선우경 | 작성일2024-12-13 | 조회수91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2024.12.13.금요일 우리 연합회의 수호자 성녀 오딜리아(660-720) 동정 대축일
이사35,1-4ㄷ.5-6.10 1코린7,25-40 루카11,33-36
주님은 나의 빛 “루멘채치스(Lumen Caecis;맹인에게 빛을)” <우리는 주님의 반사체(反射體)다>
“주님은 눈먼 이를 보게 하시며, 주님은 꺾인 이를 일으켜 세우며, 주님은 의로운 이를 사랑하시도다.”(시편146,8)
오늘 화답송 시편중 한구절이 깊이 마음에 새겨집니다. 우리가 믿고 사랑하는 주님은 이런 분입니다. 오늘 옛 현자 다산의 두 말씀도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사유는 눈빛으로 담기고, 세월은 주름으로 새겨진다. 얼굴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이 얼굴로 드러나는 것이다.”<다산> 나이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생각이 납니다. 내 눈빛은, 내 얼굴 주름은 어떤지요? 날로 깊어지는 눈빛이요 날로 뚜렷해 지는 세월의 얼굴 주름이요, 세월의 나이테인지요?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사람의 생김새가 그 사람의 성격, 생활상 등에 따른 것이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대개 익힌 것이 오랠수록 성품도 이에 따라 변한다. 속으로 마음을 쏟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 얼굴도 변하는 것이다.”<다산의 여유당전서> 이래서 좋은 덕목의 선택, 훈련, 습관을 통해 주님을 닮아갈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부단한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삶이, 영성이 그의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는 성녀 루치아(283-304) 동정 순교자 기념일로 지내지만, 우리 “선교 성 베네딕도회 오딜리아 연합회”에 속한 수도원들은 “우리 연합회의 수호자 오딜리아(660-720) 동정 대축일”로 지냅니다. 늘 자명한 사실에 대한 깨달음은 그 누구든 반드시 죽는다는 것입니다. 성인들의 생몰生沒연대를 볼 때 마다 생각하게 되는 나의 죽음입니다.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사부 성 베네딕도의 말씀이 떠나지 않습니다.
성녀 루치아는 로마 박해 시대에 순교한 동정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시칠리아 섬에서 태어납니다. 순교 연대는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그리스도교 박해기간 도중입니다. 성녀는 신심깊은 부모의 영향으로 일찍 세례를 받았고 후에 어머니의 주선으로 귀족청년과 약혼합니다만 어머니께 이미 자신이 동정서원을 한 사실을 고백했고 어머니의 승낙을 받아냅니다.
루치아는 약혼한 몸이었지만 결혼 준비로 장만한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결혼하지 않습니다. 이에 분개한 그녀의 약혼자는 루치아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시칠리아 시라쿠사의 집정관 파스카시우스에게 고발하였고 루치아는 감옥에 갇혀 온갖 고문을 받으며 신앙을 버리도록 강요받았으나 끝내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성녀의 이름 루치아는 ‘광명’, 또는 ‘빛’이라는 뜻의 라틴어 룩스(Lux)에서 유래합니다. 이름 뜻대로 끝까지 주님의 빛으로서 살다가 순교한 동정녀 루치아입니다.
오늘 대축일을 지내는 오딜리아 동정녀는 7세기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 지방의 귀족집안에서 맏딸로 태어납니다. 오딜리아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고, 잔인한 성격의 아버지는 앞도 못보는 딸로 태어난 오딜리아를 하인을 시켜 죽이려 합니다. 오딜리아는 유모의 도움을 받아 수녀원에 맡겨집니다.
오딜리아는 앞을 보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밝고 착하게 자랐고, 마침내 673년경 레겐스부르크의 성 에르하르두스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는데 세례중 바른 성유가 그녀의 눈에 닿자마자 눈이 열려 시력이 온전해지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후에 아버지와의 화해도 이뤄지고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수녀원을 세우고 원장이 됩니다. 수녀원에는 신자들을 위한 병원도 함께 지어졌고, 여기서 성녀 오딜리아는 아버지의 변화에 기뻐하며 남은 생은 기도와 봉사로 지내다가 720년 선종해 몽생트오딜 수녀원에 묻힙니다.
성녀에 대한 공경은 프랑스를 넘어 독일까지 퍼져나갔고, 9세기부터 여러 지역의 교회의 성인 호칭기도에 성녀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성녀가 묻힌 무덤은 신자들, 특히 앞을 못 보는 이들이 즐겨 찾는 순례지가 됩니다. 16세기 이전부터 성녀 오딜리아는 알자스 지방과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과 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져 왔고, 1807년 교황 비오 7세는 공식적으로 성녀 오딜리아를 알자스 지방과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 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합니다.
세례은총을 통해 눈이 열려 시력을 회복한 오딜리아, 말 그대로 “주님은 나의 빛”이라는 말씀이 이뤄진 것입니다. 루멘채치스, 맹인에게 빛을 이란 오딜리아 연합회의 모토도 여기 근거합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예나 이제나 영적으로, 무지에 눈먼이들로, 역설적으로 온통 눈뜬 맹인들로 온 세상은 차고 넘칩니다. 오늘 기념하는 성녀 루치아, 오늘 대축일을 지내는 성녀 오딜리아는 물론 교회의 모든 성인들이 주님의 빛으로, 열린 눈으로 살았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빛입니다. 맹인에게 빛을, 루멘채치스! 눈먼이들에게 빛을 주시는, 제대로 보게 하시는 주님입니다. 주님은 세상의 빛이니 주님을 따르는 이들은 생명의 빛을 얻습니다. 개안의 여정입니다. 빛이신 주님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밝아지는 우리의 눈입니다. 주님이 발광체라면 우리는 주님의 빛을 반사하는 주님의 반사체입니다. 어떻게 주님의 빛을 반사하는 주님의 반사체로 참삶을 살 수 있을런지요?
첫째, 사랑하는 삶입니다. 사랑의 빛입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날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 깨끗한 마음이요 하느님을 만납니다. 분명한 사실은 발광체는 주님이요 우리는 반사체라는 엄중한 사실이요 이를 깨달을 때 저절로 겸손입니다. 주님의 빛을 그대로 반사하는 주님의 반사체로, 주님의 빛으로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할수록 주님의 영광을 잘 반사합니다.
“네 눈은 네 몸의 등불이다. 네 눈이 맑을 때에는 온몸도 환하고, 성하지 않을 때에는 몸도 어둡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 아닌지 살펴보아라. 너의 온몸이 환하여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이 그 밝은 빛으로 너를 비출 때처럼, 네 몸이 온통 환해질 것이다.”
참으로 사랑으로 밝고 맑은 눈을 지님으로 주님의 반사체가 될 때 마음은 물론 온몸도 환한 빛이 됩니다. 저절로 심신의 치유요 구원입니다. 사랑뿐이 답이 없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여 온전히 주님의 반사체로, 주님의 빛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둘째, 찬미하는 삶입니다. 찬미의 빛, 찬미의 기쁨, 찬미의 사랑입니다. 사랑의 찬미와 더불어 주님의 반사체로, 주님의 빛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이사야 말씀이 참으로 고무적입니다. 성탄의 기쁨을 앞당겨 대림의 기쁨, 찬미의 기쁨, 찬미의 사랑을 사는 것입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은 기뻐하여라. 사막은 즐거워하며 꽃을 피워라. 그들이 주님의 영광을, 우리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 맥풀린 손에 힘을 불어넣고 꺾인 무릎에 힘을 돋우어라.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마라. 보라, 너희 하느님을!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에 들어서리라, 끝없는 즐거움이 그들 머리 위에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과 함께하여,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라.”
이런 찬미의 기쁨으로, 찬미의 사랑으로, 찬미의 빛으로 살 때 참으로 날로 주님의 반사체로, 주님의 빛으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초연한 삶입니다. 초연의 빛입니다. 무욕의, 무집착의 텅빈 충만의 초연한 삶이 참으로 자유로운 삶입니다. 날로 겸손과 비움의 여정에 충실한 자아초월의 삶과 더불어 주님의 반사체로 주님의 빛으로 살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바로 초연한 삶의 비결을 가르쳐 줍니다.
“형제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을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지납니다. 모두가 떠납니다. 세상 것들의 무시가 아니라 세상 것들에 집착하지 말고 초연하라는 것입니다. 집착의 늪에, 탐욕의 수렁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날로 이런 초연한 사랑이 주님의 반사체로, 주님의 빛으로 살게 합니다. 억지로의 이탈이나 초연이 아니라 참으로 주님을 사랑할수록 저절로 이탈의 초연한 삶에, 주님 반사체로서의 빛나는 삶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빛입니다. 주님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 발광체요 우리는 주님의 빛을 반사하는 반사체입니다. 루멘채치스! 주님의 반사체로, 주님의 빛으로 살 때 눈먼 이들에게 주님의 빛을 줄 수 있습니다. 답은 셋입니다. “사랑하라, 찬미하라, 초연하라”입니다. 한결같이 이렇게 살 때 주님의 반사체로 주님의 빛으로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주님, 당신을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8,12).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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