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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 제2주간 금요일,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12-13 조회수67 추천수4 반대(0) 신고

[대림 제2주간 금요일,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 마태 11,16-19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팔짱을 낀 완고한 자세로 당신 말씀을 꼬투리 잡아 비판하기만 하면서 받아들일 생각은 하지 않는 이들을 장터에 앉아 놀이를 하는 미성숙한 아이들의 모습에 빗대어 설명하십니다. 그 아이들이 ‘미성숙’하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즉 그 아이들은 남들이 자기가 원하는대로 따라주기만을 바랄 뿐, 정작 자신은 남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설령 안다고 해도 그들이 원하는대로 따라줄 의지도 없기에, 철저히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기에 미성숙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원하는대로 하며 누구에게도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착각하겠지만, 현실은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고립된 채 고독하게 살아가는 ‘외톨이’일 뿐이지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유다인들이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그들은 철저한 회개와 엄격한 고행을 강조하는 요한의 가르침을 따르기가 너무나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를 ‘마귀 들린 사람’ 취급하며 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핑계를 만들었지요. 또한 세리나 창녀들처럼 당시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배척받던 ‘죄인’들, 그리고 함께 해봐야 이득될 게 없는 힘 없고 가난한 이들과는 같이 어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시는 예수님을 ‘먹보요 술꾼’ 취급하며 그분처럼 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만들었지요. 그러나 그들이 요한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분들 때문에 자기 삶이 변화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의 가르침을 올바른 것, 중요한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삶 속에서 실천해야 되는데, 그렇게 하면 자기들이 세속적인 이익을 더 얻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해야 될까봐, 하기 싫고 귀찮은 ‘의무’와 ‘책임’을 떠맡게 될까봐 두려웠던 겁니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이 그들에게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것은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과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위함입니다. 자기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하느님께로 삶의 방향을 돌리는 회개는 구원받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충만히 받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은 우리가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잘 가꾸어 완성시켜 나가야 할 참된 기쁨과 행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걸 모르는 철없는 아이 같은 사람들은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내놓으라고, 멸망을 피할 방법이나 세상에서 성공할 방법 같은 걸 알려달라고 고집을 부리며 떼를 쓰는 것이지요.

 

그들에게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과 행동으로, 아버지의 뜻에 철저히 순명하시는 삶으로 당신이 전하시는 메시지가 옳다는 것을, 그 메시지가 당신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그분의 뜻임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입을 삐쭉거리며 군소리하거나 핑계거리를 찾는 게 아니라, 주님의 뜻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명으로 따르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분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가 피리를 불면 함께 춤을 춰 주시고 우리가 곡을 하면 함께 울어주시는데, 왜 우리는 그분을 위해 그렇게 해드리지 못하고 자꾸만 핑계를 댈까요?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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