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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4.12.1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4-12-14 조회수113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4년 12월 14일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등의 대작을 남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대작을 남긴 이유를

들으셨습니까? 다름 아닌

빚 때문이었습니다.

알코올 의존증으로 많은 빚을

졌기 때문입니다. 또 ‘고리오 영감’

을 쓴 프랑스 작가 오노레 데 발자크도

도박 빚에 쫓겨서 억지로 글을 썼고

그 글로 엄청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위대한 대작은 때로 이렇게

조급하고 불안할 때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위기가 기회’라는 말도

있는 것이 아닐까요? 따라서

위기라면서 포기하고 좌절에

빠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다가올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 아님을

당신 부활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꾸준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실제로 이 꾸준함으로 뉴스 기사의

한쪽을 채우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쉰 살이 넘어 사이클 마니아가

되었다는 이야기, 예순 중반에

머슬 마니아 대회에 참석하신 분,

일흔이 넘어 대학교에 입학하신 분

등등 정말로 많습니다.

이분들이 탁월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탁월함보다 꾸준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사회적 시계를 중시합니다.

그래서 20대에는 취업하고,

30대에는 결혼하고, 40대에는

내 집 마련 같은 과업에 집착합니다.

그리고 6~70대에는 은퇴와

노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꼭 그럴까요? 나의 시계와

사회적 시계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꾸준함을

가지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후회 없는

삶을 살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엘리야가

이미 왔어도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으며, 이제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받을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왜 사람들은 예언자 엘리야의 모습으로

온 세례자 요한을 알아보지 못하고,

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세상의

눈으로만 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꾸준함을 가지고 하느님께

집중해야 하는데,그들은

하느님을 말하면서도 세상의

관점으로만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세례자 요한도 또 예수님도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혼란으로 가득 찬 세상처럼 보입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은 더 늘어가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고 좌절하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도 직접 그 모든

고통과 시련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꾸준함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뒤에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우리의 구원이 펼쳐집니다.

오늘의 명언

사랑했던 시절의 따스한 추억과

뜨거운 그리움은 신비한 사랑의 힘으로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게 한다.

(그라시안)

사진설명: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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