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엘리야의 재림 “나는 누구의 재림일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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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선우경 | 작성일2024-12-14 | 조회수51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2024.12.14.토요일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1542-1591) 기념일 집회48,1-4.9-11 마태17,10-13
엘리야의 재림 “나는 누구의 재림일까?”
“하느님,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어 주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시편80,4)
작금의 위기의 시대, 저절로 시편 화답송 후렴 기도를 바치게 됩니다. 참으로 어수선한 세상입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을 또 배웁니다. 이 또한 전화위복이 기회가 되리라 믿습니다. 똑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견해가 극단적으로 갈리니 참 잘 분별해야할 것 같습니다. 이래서 현재를 알기위해 역사 공부는 필수입니다. 역사를 통해 오늘을 잘 드려다 보고 분별하여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만세칠창중,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 기도는 절박하고 간절할 수 뿐이 없습니다. 새벽 언뜻 눈에 들어온 성구가 위로가 됩니다.
“하느님은 빛이시다. 그분 안에는 어둠이 없다” (God is light, and in Him, there is no darkness)
괄호 안에 영어로 써놓고 다시 확인해 봅니다. 참으로 무지의 어둠을 밝히는 말씀의 빛, 하느님의 빛입니다. 하느님의 빛 안에서 ‘진리의 연인’이 되어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와 더불어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현자의 지혜도 좋은 도움이 됩니다.
“나무는 먹줄을 따르면 반듯해지고, 군주는 간諫하는 말을 들으면 거룩해진다.”<서경> “막막한 바다와 같은 삶을 헤매지 않도록, 길잡이가 되어주는 자신만의 별자리를 마련하라.”<다산>
길잡이의 스승과 주변의 의견에 경청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삶의 좌표가 되는 자신만의 별자리 같은 영적스승을 영적도반을 마련하자는 것입니다. 저의 별자리가 되는 분들은 교회내의 별같은 성인들입니다. 오늘 기념일 미사를 봉헌하는 중세기 스페인의 아빌라의 대 데레사와 쌍벽을 이루는 위대한 신비가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역시 제 별자리가 되는 분입니다.
1563년 21세 되던 해, 가르멜회에 입회해 1567년 사제가 된 후, 여성 가르멜회 개혁에 성공한 아빌라의 데레사와의 만남을 계기로 ‘맨발 가르멜회’를 창립하여 개혁을 시도하나 거부되어, 1577년 가르멜회 수사들에 의해 톨레도의 수도원에 유폐되었고, 9개월후 탈출에 성공합니다.
그 뒤 1581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에 의해 맨발 가르멜회가 공인되지만, 1591년 마르리드에서 개최된 수도회 총회에서 비판을 받아 은자가 되었고, 그해 우베다의 한 수도원에서 쓸쓸히 향년 49세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평생 고통과 수난의 삶이었지만 성인의 영적체험과 주옥같은 시편들은 그 누구의 추종도 불허합니다. 십자고상의 예수님과 대화의 신비체험도 유명합니다.
“요한아, 너의 이 모든 수고에 대한 대가로 무엇을 원하느냐?” “주님, 당신을 위해 고통을 받고 경멸을 받는 것입니다.”
얼마나 깊고 멋진 주님과 사랑의 만남인지요! 이런 영적 환시 체험이 연속된 고난을 이겨낸 힘이 되었음을 봅니다. 이와 비슷한 체험을 했을 때 도미니코회의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님, 당신만으로 충분합니다. 당신을 제외한 어떤 것도 원치않습니다.”라는 고백도 연상됩니다. 두분 다 바오로 사도처럼 예수님이 삶의 전부였을 정도로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성인의 영성고전에 속하는 대표 작품으로는 ‘가르멜의 산길’, ‘어두운 밤’, ‘영혼의 노래’가 있습니다. 1726년 교황 베네딕도 교황 13세에 의해 시성되고, 1926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됩니다.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현재의 나를 알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을 통해 엘리야의 재림을 알아채는 예수님의 혜안이 놀랍고 배워야 함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은 영광스러운 변모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 대화를 나눈후 일어난 엘리야의 재림에 관한 내용입니다.
새삼 시공을 초월하여 빛이신 하느님 안에서 옛 성인들과 깊은 내적 통교를 나눴던 예수님임을 깨닫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성 보나벤투라를 스승으로 삼았던, 또 ‘진리의 협조자’로 불리기를 좋아했던 교황 베네딕도 16세도 생각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물음에 명쾌한 답을 주십니다.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의 뿌리에 닿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 잡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뤘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망각의 병이 문제입니다. 망각의 무지로 인해 반복되는 악순환의 역사이고 인류역사가 지속되는 한 계속될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의 재림임을 알았고, 세례자 요한의 고난에서 자신의 고난을 예견하는 예수님입니다. 엘리야의 재림이 세례자 요한이라면 대림시기를 맞는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재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엘리야가 누굽니까? 구약에서 에녹과 모세와 더불어 승천한 분으로 꼽히는 분입니다. 얼마나 하느님과 깊은 일치의 삶을 살았는지 오늘 제1독서가 잘 보여줍니다. 단숨에 읽혀지는 참으로 통쾌한 집회서의 말씀 안에 얼마나 백성들의 사랑과 신뢰를 한몸에 받은 엘리야인지 그 진면목이 잘 드럽납니다.
“엘리아여, 당신은 놀라운 일들로 얼마나 큰 영광을 받았습니까? 누가 당신처럼 자랑스러울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불 소용돌이 속에서, 불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 당신은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의 재림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정해진 때가 되자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 바로 은총의 대림시기 우리 모두 엘리야의 재림이, 세례자 요한의 재림이 되어, 주님의 분노를 진정시키고 어른들의 마음을 젊은 이들에게 되돌리며 공동체내의 안정과 평화를 구축하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 후반부 말씀도 참 좋은 힘이 됩니다.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우리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그대로 우리의 고백으로 삼아도 좋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만나는 참 좋은 성인들이고, 우리를 떠났지만 우리가 사랑했던 주님 안에서 잠든 행복한 분들이요, 우리도 반드시 살아나 만날 것을 믿습니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대림시기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주님과 함께 우리 모두 재림한 세례자 요한이 되어 주님의 길을 마련하게 하십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루카3,4.6).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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