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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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12-14 | 조회수17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사람들이 죽음을 생각하면 무서워합니다. 저도 쉽게 바로 나의 죽음을 바로 받아 들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의 영적인 스승님이며 아버님은 죽음을 바로 받아 들고 가신 분입니다. 어머님 연명 치료로 형제들과 같이 싸우는데도 한치의 양보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어머님은 바로 임종의 고통중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신부님 본인도 연명치료 없이 바로 돌아가셨습니다. 성인들의 삶이 그렇습니다. 아니 그렇게 살아서 무엇이 행복하다고 그렇게 고통중에 살아? 그러나 분명히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몸과 영혼이 하늘길을 걸어가는데 그런데 세상은 땅의 길을 걸어가니 그 삶의 Gap이 엄청나지요. 병이 발생하는 원인이 몸의 균형 상태가 무너져서 병이 발생하는데 그런데 하느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늘의 삶을 살아가는데 인간 세상과 Gap이 발생하는것은 당연하지요. 그런데 인간이 한가지 망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아니 성당 왔다갔다 하면서 그 성당 신자들과 같이 웃고 울면 그것으로 천국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무탈하면 천국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분명한 Jump가 필요합니다. 정화의 시간이 필요하고 성화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 어찌 눈이 열려서 하느님의 아들을 알아 보겠나요? 그런데 그냥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것을 어찌 아나? 그것은 성당에서 신부님의 강론을 들을때면 신자들이 남의 이야기로 알아듣습니다. 그럴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하지 나의 이야기로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걷도는 것이지요.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면 바로 나의 이야기로 받아 들이면 그것은 성화의 여정속에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그럴수도 있지 하면 그것은 발신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림 예수가 와도 100% 폭행을 당하고 고난 속에 살면서 세상 사람들로 부터 버림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알아보고 기쁨과 찬미와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지요. 거기서 심판이 이루어 지는 것이지요. 늘 나를 떠나는 여정 속으로 넘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신약성서에 나오는 시뫼온과 같이 주님을 알아 보고 기뻐하는 사람 말입니다. 그리스도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내 앞에 있습니다. 아니 내 안에 있습니다. 주님을 알아 보고 기뻐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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