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예수님을 왜 믿는가?”부터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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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12-14 | 조회수44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예수님을 왜 믿는가?”부터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그제야 제자들은 그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마태 17,10-13).”
1) 이 이야기의 바로 앞에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이야기’가 있습니다(마태 17,1-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일을
체험하면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는데,
그래도 의문이 하나 남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은 믿지만, 엘리야 예언자가
메시아보다 먼저 온다는 예언은 실현되었는가?
실현되었다면 누가 엘리야 예언자인가?”
예수님의 답변은 “엘리야는 이미 왔고, 자신의 사명을
수행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엘리야라는 것을 믿지 않고
그를 죽였다. 엘리야 예언자를 죽인 자들은
메시아도 죽일 것이다.”입니다.
이 말씀은, 세례자 요한이 바로 엘리야 예언자라는 것을
확인해 주신 말씀이기도 하고,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암시하신 말씀이기도 하고,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제야 제자들은 그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는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을 알아들었고,
그래서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고,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더욱더 굳게
확신하게 되었다.”입니다.
2)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사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재림을 알려 줄 때, 교묘하게 꾸며 낸 신화를
따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위대함을 목격한 자로서
그리한 것입니다. 그분은 정녕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영예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존귀한 영광의 하느님에게서,
‘이는 내 아들,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하는 소리가 그분께 들려왔을 때의 일입니다.
우리도 그 거룩한 산에 그분과 함께 있으면서,
하늘에서 들려온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2베드 1,16-18).”
예수님이 메시아(구세주)라는 사도들의 증언은, 무슨 공부를
통해서 얻은 지식도 아니고, 누군가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고,
사도들 자신들이 직접 체험하고 믿은 일에 대한 증언입니다.
“우리는 직접 보았다. 그래서 믿는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언도 같습니다.
오늘날의 우리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은, 사도들의 증언을 믿기 때문입니다.>
3) 그렇지만 사도들이 믿었으니
우리도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의 우리 입장에서 다시 표현하면, “우리가 찾는
메시아가 예수님이라고, 또 우리가 원하는 구원은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다고, 사도들이 알려 주었다.”입니다.
신앙이란, 강제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믿고 싶지 않다는 사람을 억지로 믿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처음에 예수님을 만난 일과 믿게 된 일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그곳에 다시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요한 1,35-41).”
안드레아 사도가 베드로 사도에게 가서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라고 증언한 것을 근거로 해서,
제자들은 원래 메시아 강생을 갈망하면서 기다리고 있었고,
메시아께서 주실 구원을 얻기를 희망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시다.” 라고 알려 주었고,
그들은 그 말을 믿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는
“예수님의 삶을 보고, 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입니다.
만일에 사도들이 메시아를 기다리지 않았다면, 또 구원이
아닌 다른 것을 희망하고 있었다면, 세례자 요한의 말을
흘려들었을 것이고, 예수님을 따라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만일에 하느님 나라, 구원, 생명 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세속의 부귀영화나 출세나
성공 같은 것만 원한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이고,
종교나 신앙을 가질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그런 세속적이고
현세적인 것을 얻기만을 희망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것은 메시아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신앙이 아닙니다.
대림 시기는, “나는 지금 무엇을 찾고 있는가?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께 무엇을
청하고 있는가?”를 다시 반성하고 점검하는 시기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대림 제2주간 토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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