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반영억 신부님_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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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12-15 | 조회수44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오늘은 대림 제3주일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기억하며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의 기회를 갖습니다. 이 시간 자선의 의미에 대해 묵상하는 가운데 하느님게서 우리를 새롭게 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겨울, 저녁 시간에 손님이 왔습니다. 젊은 부부가 사내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사업에 실패하여 큰아이는 보육원에 맡기고 일자리를 찾아 떠돌고 있다며 4살 된 아이도 맡길 수만 있다면 맡기고 싶다고 하면서 하룻밤 재워달라고 청하였습니다. 낯선 사람이었지만 아기가 안쓰럽고, 마침 빈방이 있어서 잠자리를 준비하고 아이를 맡길 곳을 이리저리 알아봤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금일봉을 주고, 다음 날 다시 연락을 취할 것을 부탁하고는 점퍼와 목도리를 둘러 주고는 보냈는데 마음이 아팠습니다.
다음날 옆 본당 신부님으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와서 확인해 보니 제가 만난 분이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밥을 사주고 여관에서 잠을 재우고 돈을 얼마 주고 보냈지만, 이대로 둬야 하느냐는 문자였습니다.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다음 날 다른 지역의 성당에서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들이 신부를 속이는 것인지, 신부들이 그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인지? 어찌되었든,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천사를 만나진 못하더라도 도움을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하는 신부님들이었습니다. 사실 신부가 이럴 때 곤란함을 느낍니다. 알면서도 속고, 모르면서도 속고, 이래서 속고 저래 속고 그래도 때가 되면 깨우칠 날이 오겠지? 나를 속여도, 다른 사람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걸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그를 무시하고 지나치진 않나요? 예수님처럼 그를 바라보고 있나요? 도움의 손길을 건넬 때, 그의 눈을 보나요? 그의 손을 잡아 그의 온기를 느껴본 적이 있나요?... 착각하지 맙시다. 자선은 단순히 무엇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선을 베풀 때 가장 큰 은총을 받는 이는 바로 그 손을 내민 사람입니다. 그 순간, 주님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은총을 받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히브리13,2) 하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5,42).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카6,38).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축복해 주는 이는 자기도 흡족해지고, 마실 물을 주는 이는 자신도 흠뻑 마시게 됩니다’(잠언11,25). 받기 위해 준다면 참사랑이라고 할 수 없지만, 기회가 되면 지혜롭게 베풀어야 합니다.
자선은 이웃을 구체적으로 돕는 행위이지만 내 자신의 영생을 보장받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선으로 씨를 뿌릴 때 거기서 거두는 열매로 천국의 곳간이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성 베드로 클리솔로그). 그러므로 이웃의 처지를 헤아리고 그들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그들에게 힘과 위로가 되어 주시고 동시에 영생의 복을 오늘로부터 누리시길 바랍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루카3,8)고 한 요한에게 군중이 묻습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루카3,10). 세리도, 군인들도 “그러면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같은 물음을 던졌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옷을 두 벌 가진 이는 못 가진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다른 이와 나눠야’ 하며, 세리는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말 것’이며 군인들도 ‘갈취하지 말고 자신의 봉급으로 만족하라’고 했습니다. 결국 자기 분수를 알고 분수에 맞게 처신하되 베푸는 삶, 정의로운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법을 잘 몰라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누구든지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리는 계명은 우리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거나 멀리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신명 30,11-13참조).
여러분은 오늘 성당에 오시면서 거울을 보고 몸단장을 하고 오셨을 것입니다. 오늘뿐 아니라 수시로 거울을 봅니다. 그리고 무엇이 묻거나 잘못되었으면 바로 고칩니다. 저도 거울을 자주 봅니다. 아마 얼굴에 무엇이 묻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다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은 어디에 비춰봅니까? 거울에 비춰보면 보입니까? 우리 영혼의 상태를 거울에 비춰보면 그 상태를 낱낱이 볼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의 상태, 영혼의 상태를 비춰보는 거울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이 우리 ‘영혼의 거울’입니다.
야고보서 1장21절 이하에 보면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사실 누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그는 거울에 자기 얼굴 모습을 비추어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자신을 비추어 보고서 물러가면, 어떻게 생겼었는지 곧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완전한 법 곧 자유의 법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머물면,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에 옮겨 실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의 그 실행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영혼의 거울인 성경 말씀에 나를 비춰보고 잘못되었으면 바로 고쳐야 합니다. “저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어서 그 답을 얻었으면, 그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대로 하면 축복이 주어지고, 행복해 집니다. 성경을 통해 ‘가진 것을, 먹을 것을, 나누어 주어라’.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어라’ 하는 말씀을 들었으면 그냥 넘어가지 말고 기도하면서 행동으로 옮겨야 하겠습니다. 어영부영, 우물쭈물, 할까말까? 망설일 수 없습니다.
오늘 2독서 말씀입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필리4,6-7). 주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그대로 행하십시오. 그리하면 반드시 행복해질 것입니다.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어느날 놀부 집에 스님께서 시주를 받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코웃음을 치며 거절하였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눈을 감고 불경을 외었습니다. 네가 나를 외면 해도 나는 너에게 복을 빌어주마! 하고 “가나봐라 가나봐라 가나봐라”. 이 소리를 듣고 있던 놀부가 질세라 “주나봐라, 주나봐라. 주나봐라” 하였답니다. 지나가던 부인이 그 모습을 보고 “잘해봐라 잘해봐라 잘해봐라”했습니다. 마침 고승이 지나가게 되었는데 “왼만하면 주지그래. 왼만하면 주지그래. 왼만하면 주지그래” 하였답니다.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민첩하게, 그리고 후회 없이 주십시오!
“자비는 결코 강요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조용히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하늘에서부터 저 낮은 곳으로 떨어져 내릴 뿐이다”(세엑스피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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