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림 제3주일 다해, 자선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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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12-15 | 조회수84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대림 제3주일 다해, 자선주일] 루카 3,10-18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가톨릭 사제이자 시인인 ‘알프레드 디 수자’가 지은 시입니다. 이 시의 내용을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찬찬히 묵상하다보면 우리가 한 번 뿐인 삶을 기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 지 그 길이 보이지요. 첫째,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나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며 그분께서 기뻐하시도록, 나도 그분과 그 기쁨을 함께 누리도록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가치들을 가꾸고 지켜야 한다는 뜻일 겁니다. 둘째,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맘껏 사랑하라고 합니다.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마음이 주눅들면 나를 온전히 내어줄 수 없기에 제대로 사랑할 수 없으며 사랑이 주는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걸 아시면서도 우리에게 보내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에 따르는 상처를 용기있게, 기꺼이 받아들여야 사랑이 주는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셋째,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고 합니다. 아무도 듣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하느님은 내 말을 다 듣고 계시고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거짓과 위선으로 자신을 포장할 생각말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실된 언어로 진심을 담아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내뱉은 말들이 하느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노래가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넷째,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고 합니다. 돈만 있으면 안되는게 없는 세상이지만, 재물이 우리 삶의 목적이자 의미가 되어버리면 삶이 피폐해지고 우리 노동이 가치를 잃게 되지요. 그러니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하느님의 일에 협력하는 그분의 동반자가 되어 내 자존감을 높이라는 뜻입니다. 다섯째,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고 합니다. 그렇게 살면 지금 할 중요한 일을 ‘나중’으로 미루다가 뒤늦게 후회할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오늘이 하느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마지막 날인 것처럼 치열하게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살아야 삶에 후회나 미련을 남기지 않고 최고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 대림 3주일은 ‘장미주일’이자,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여라’라는 입당송의 메시지를 따서, ‘기뻐하라’(Gaudete)주일이라고 부릅니다. 보통 대림시기에 사제는 참회하고 보속하는 심정으로, 우리에게 오실 구세주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자색 제의를 입지만, 오늘만큼은 특별히 신앙생활의 ‘기쁨’을 상징하는 장미색 제의를 입지요. 우리를 구원의 잔치에 데려가실 주님을 깨어있는 자세로 끝까지 기다리려면 우리 마음 속에 참된 기쁨을 품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기쁨이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하고,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하고 나눌수록 그 기쁨은 점점 더 커져 나중에 하느님 나라에서 참된 기쁨으로 완성되지요. 그러니 어둠이 가장 짙은 한밤 중에 등불을 켜들고 신랑을 마중나갔던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가 그분을 맞으러 나갈 때 필요한 신앙의 등불을 밝힐 기쁨이라는 기름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지 자기 자신을 돌아보자는 것이 오늘 ‘기뻐하여라’ 주일을 지내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기쁨이라는 기름을 채우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오늘 복음의 초반부에서 그 힌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군중들이 요한에게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건 요한이 그들에게 선포한 회개의 메시지를 듣고 궁금한 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바로 이전 부분에서 요한은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질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하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권고하지요. 이에 군중들이 요한에게 자기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은 건, 요한의 말을 듣고 그들의 마음이 움직였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든, 아니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변화되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든, ‘이대로는 안된다’는 경각심이, ‘달라지고 싶다’는 의지가 그들 마음에 생긴 겁니다. 그 의지야말로 신앙생활의 참된 기쁨을 누리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지요.
그들의 마음 속 의지를 확인한 요한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는 ‘처방전’을 써줍니다. 그런데 그 처방전이라는 게 특별하고 거창한 내용이 아닙니다. 제가 병원 가면 의사 선생님께 의례 듣는, ‘밀가루 음식 많이 드시지 마시고 운동 꾸준히 하시고 잠 푹 주무세요’ 수준의 일상적인 권고이지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일상’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게 참 어렵습니다. 만약 그게 쉬웠다면 저도 진작에 살을 한 20킬로 정도 빼서 고지혈증 약을 끊어버렸을 겁니다. 잠깐 고생하면 끝나는 ‘특별한’ 그 무엇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을텐데,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되어 단단히 고정된 나의 ‘일상’에 균열을 내야 하는 것이기에, 꾸준히 반복되어 나의 습관이 되고 일부가 되어버린 것에 다시 꾸준한 반복을 통해 새로운 습관을 들여야 하는 것이기에 힘이 들지요.
요한의 첫번째 권고는 꼭 필요한 것 이상으로 소유한 것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나누어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충분한 여유가 있어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요한은 옷이 두벌만 있어도 한 벌을, 음식이 이틀 치만 있어도 하루치를 나눌 수 있으며 또한 나누어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래야 나도 모르게 재물에 의지하려는 마음을 다잡고 하느님을 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각자 더 가진 것을 나누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움으로써 하느님을 닮은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두번째 권고는 필요 이상으로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드는 ‘탐욕’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적당한 욕심은 우리 삶에 활력을 주는 긍정적 에너지가 되지만, 과한 탐욕은 나를 재물에 집착하게 만들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죄’를 짓게 하기 때문이지요. 요한의 세번째 권고는 자기가 가진 것으로 ‘만족’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 소유를 욕망으로 나눈 것이 행복인데 소유는 어느 정도 이상으로 늘릴 수 없기에, 또한 가진 게 많을수록 ‘더더더’를 외치는 탐욕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에 삶의 기쁨을 더 크게 누리려면 욕망의 크기를 줄여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요한은 그 밖에도 여러가지로 권고하면서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요한이 선포한 구원의 메시지가 나에게 ‘기쁜 소식’이 되려면, 내가 구원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로만 ‘주님 주님’하지 말고, 삶 속에서 주님의 뜻을 충실히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요. 그래야 하느님 나라에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 ‘안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일단 오늘 복음에 나오는 요한의 권고부터 실천합시다. 쓸 데 없는 탐욕을 부리지 말고, 이미 가진 것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베풉시다. 그러면 비로소 삶의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기뻐하여라 주일’인 오늘 ‘자선 주일’을 함께 지내는데에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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