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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예수님의 권한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분별의 지
작성자선우경 쪽지 캡슐 작성일2024-12-16 조회수119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4.12.16.대림 제3주간 월요일                                                   

 

민수24,2-7 필리4,4-7 루카3,10-18

 

 

예수님의 권한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분별의 지혜”

 

“주님,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시편25,4)

 

교황님 홈페이지 뉴스에 감동했습니다. 영원한 청춘의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가 제47차 해외 사목 방문 여정에 오른 것입니다. 프랑스와 이태리 사이에 있는 지중해에 있는 프랑스의 섬인 인국 35만의 “코르시카”섬입니다. 교황님의 생년월일은 1936년12월17일이니 내일이면 만88세가 됩니다. 그러고 보니 내일 12월17일은 교황님의 생신입니다. 

 

고령의 연세에 여전히 지혜의 절정을 누리시는 교황님을 통해 새삼 하느님의 은총을 깨닫게 됩니다. 교황님의 존재자체가 노령의 신자들에게 용기를 붇돋아 줍니다. 코르시카에서 한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용서하라, 언제나 용서하라.”

(Forgive everything, forgive always)

 

괄호안에 영어를 삽입하니 더욱 분명히 마음에 각인됩니다. 코르시카의 사제들과 수도자들에게 하신 강론의 요지입니다. 역시 현자의 지혜로운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은 인간으로부터가 아닌 하느님으로부터 옵니다. 교황님을 통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다산 정약용의 지혜도 우리의 무지를 일깨워 믿음을 새롭게 합니다.

 

“삶을 돌아보면 기뻐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 풍족하지는 않아도 굶지는 않으니 애써 다시 근심하지 마라.”

“하늘이 만물을 낳을 때는 아울러 그가 먹을 양식도 함께 주신다. 그런데 어찌 근심 때문에 방황하며 기회를 놓칠까 두려워하는가?”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권한에 대한 논쟁입니다. 제가 볼 때 지혜와 무지의 대결같습니다. 정말 눈밝은 현자라면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이 하늘로부터 온 것임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인데 편견의 무지에 눈먼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예수님의 권한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신학적 지식이 반드시 지혜와 함께 가는 것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성전정화 사건 직후입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누가 이런 권한을 주었소?”

 

무지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무엇으로 답변해도 무지한 이들은 이의를 제기할 것입니다. 교황님의 악마와 대화하지 말라는 충고도 생각납니다. 이에 대해 질문으로 역공하는 예수님의 지혜와 용기가 빛납니다. 세례자 요한의 경우를 들면서, 세례자 요한의 세례의 근거를 묻습니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겠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예수님의 적대자들에게는 말 그대로 진퇴양난의 물음입니다. 하늘에서 왔다하면 왜 믿지 않느냐는 물음에 직면할 것이고, 인간에게서 왔다하면 하늘에서 왔음을 믿는 군중이 두려워 도저히 답변할 수 없으니 궁지에 몰린 적대자들의 답변에 더 이상의 질문을 봉쇄해 버립니다.

 

“모르겠소.”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무지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정말 볼 줄 하는 지혜를 지닌 자라면 교황님의 말씀이 하늘로부터 오듯, 세례자 요한이나 예수님의 권한도 하늘로부터 오는 것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하느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자에게 선사되는 분별의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민심이 천심입니다. 민심을 이기는 위정자들은 없습니다. 민심이 바다라면 위정자들은 바다위에 떠있는 배같습니다. 엊그제 국회의 탄핵 결정에 200백만 시민이 감격의 환호로 응답한 사실은 이 결정이 하늘로부터 온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이런 거대한 사건 말고도 가짜뉴스와 정보와 지식이 범람하는 일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분별의 지혜가, 지혜로운 삶이 참으로 절박한 시대입니다. 

 

무엇보다 지혜의 눈이 열리는 개안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현실입니다. 바로 개안의 모범이 예수님은 물론 오늘 제1독서 민수기의 발라암입니다. 두 환시가 그대로 대림과 성탄에 있을 이상향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의 말이다.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의 말이다.” 

 

무지의 눈이, 무지의 귀가 활짝 열린 참 멋진 발라암은 두 환시가 대림을 지내는 우리들에게 무한한 위로와 힘을 줍니다.

“야곱아, 이스라엘아, 너의 거처가 어찌 그리 좋으냐! 골짜기처럼 뻗어있고, 강가의 동산 같구나. 주님께서 심으신 침향나무 같고, 물가의 향백나무 같구나!”

아름답기가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현실을, 주님과 함께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꽃자리 환경을 묘사하는 듯 합니다. 신비롭고 황홀한 발라암이 전하는 선물같은 비전이자 환시입니다. 발라암의 두 환시는 그대로 인간이 아닌 하늘로부터 오는 것임을 직감적으로 깨닫습니다. 두 번째 멋진 환시도 그대로 메시아 탄생을 예시하는 환시입니다.

 

“나는 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야곱에게서 솟는 별 하나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는 왕홀이 상징하는 바 탄생하실 메시아 예수님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무지의 눈을 열어주시어 하느님의 지혜인 주님과 하나되어 온유하고 겸손한 삶을, 지혜롭고 자비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저를 가르치시어 

 당신 진리로 이끄소서,

 당신은 제 구원의 하느님이시옵니다.”(시편25,5ㄱㄴ).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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