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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신앙인은 하느님만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12-16 조회수83 추천수4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우리에게

 

말할 것이오.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 하자니 군중이

 

두렵소. 그들이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마태 21,23-27)”

 

 

 

1) 여기서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라는 말은,

 

“아무 권한도 없으면서 왜 당신 마음대로 이런 일을

 

하는가?” 라고 비난하는 말입니다.

 

‘이런 일’은 좁은 뜻으로는 ‘성전 정화’를 가리키고,

 

넓은 뜻으로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 전체를 가리킵니다.

 

사제들과 원로들이 말하는 ‘권한’은 유대교에서 주는 권한을,

 

즉 제도권 안에서의 권한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권한을 받으신 적이 없습니다.

 

사제들과 원로들의 눈에는, 제도권 밖에 있는 예수라는

 

‘야인’이 어느 날 갑자기 예언자 행세를 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들이 대부분 제도권의

 

‘밖에’ 있었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2)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을 언급하시면서 ‘반문’하신 것은,

 

대답을 회피하신 것이 아니라, “세례자 요한에게는 권한을

 

어디에서 받았느냐고 묻지 않았으면서, 왜 나에게는 그것을

 

묻느냐?” 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라는 말씀은, “세례자 요한은 이미 나에

 

대해서 증언했다. 너희가 요한의 증언을 믿는다면

 

내가 권한을 하느님에게서 받았음을 믿을 것이고,

 

나를 믿을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당시에 백성들은 세례자 요한을 ‘하느님의 예언자’로 믿었고,

 

그 믿음에 대해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제도권 안에 있는 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도......

 

<앞의 3장을 보면,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가 세례를

 

받으려고 세례자 요한에게 갔다는 말이 있습니다(마태 3,7).>

 

그러나 “나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 라고 자처하는

 

위선자들은, 겉으로는 세례자 요한을 예언자로 인정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요한의 회개 선포를 무시했습니다.

 

그것은 세례자 요한이 하느님의 예언자라는 것을

 

믿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3)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 하자니 군중이 두렵소.

 

그들이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라는 말은,

 

사제들과 원로들이, 요한을 보내신 하느님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군중의 여론만 두려워했음을 나타냅니다.

 

그들이 군중의 여론만 두려워한 것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잃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재물만 섬기고 하느님은 섬기지 않은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는, “우리는 요한의 세례가

 

‘하느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선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의 세례를

 

받지 않았다.” 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4) 여기서 “모르겠소.” 라는 사제들과 원로들의 말은,

 

정말로 몰라서 한 말이 아니라, “관심 없다. 말하기 싫다.”

 

라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그들은 세례자 요한이 정말로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또 세례자 요한이 선포한 회개 선포에 대해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 가서 세례를 받는 것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관심 갖는 것은,

 

자신들의 지위와 재산을 지키는 것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정말로 메시아인지에 대해서도, 또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성전 정화’ 같은 일을 하심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험하게 하신 것만 신경 썼습니다.>

 

 

 

5)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라는 예수님 말씀은, “너희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일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면, 너희는 나의 복음을

 

들을 자격이 없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들을 자격이 없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잃은 양’을 끝까지 찾으시는 착한 목자이신

 

분이고,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에(마태 18,14), 예수님께서 그들을

 

구원에서 아예 배제하신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들, 사제들, 원로들 같은 위선자들과 기득권층

 

사람들도 회개시켜서 구원해야 할 ‘잃은 양들’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은, 그들 자신들이 스스로 해야 합니다.

 

인간 쪽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회개와 구원을 ‘저절로(자동적으로)’ 얻는 일은 없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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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림 제3주간 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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