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우리 믿는 이들의 족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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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선우경 | 작성일2024-12-17 | 조회수91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2024.12.17. 12월17일
창세49,1-2.8-10 마태1,1-17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우리 믿는 이들의 족보이자 뿌리> “배웁시다, 하느님의 항구한 인내와 겸손의 사랑을!”
“오 지혜 지극히 높으신 이의 말씀이여, 끝에서 끝까지 미치시며 권능과 자애로 다스리시는 이여, 오시어 우리에게 슬기의 길을 가르쳐주소서.”
매해 대림시기 둘째부분 첫날 12월17일 반복되는 저녁성무일도 마리아의 노래 "오(O)!" 후렴은 늘 새롭고 감동적입니다. 매일 미사중 복음 환호송에서도 반복되는, 오시는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오늘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생신일이기도 합니다.
1936년12월17일생이니 만88세가 되는 날입니다. 코르시카 하루 방문후 귀국중 기내에서는 동행했던 언론인들에게 “Happy Birthday” 축하노래도 선물 받았고, 교황은 웃으며 “Thank you!” 감사인사와 더불어 강복으로 응답했습니다. 귀국후 또 여러 방문객들을 접견하시니 교황님보다 사람들 많이 만나고 바쁘신 분도 없을 것입니다. 개인 시간은 전혀 없는 모두가 공개된 공인으로서의 삶입니다. 만88세 고령의 연세에 피곤한 기색없이 늘 미소띈 모습으로 한결같이 대하는 모습은 진정 예수님의 후예답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그대로 잇고 있는 교회의 최고 어른입니다.
“투기나 전쟁이 아닌 희망에 투자하라!” 교황청을 방문한 은행원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노후대책뿐 아니라 사후대책을 위해 희망에 투자하라 했다는 어느 주교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희망의 순례자로 사는 것보다 더 좋은 미래에 대한 투자는 없을 것입니다. “화해는 마음의 일이다. 주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에 닿을 때, 그분은 우리를 변형시킨다.” 역시 교황청을 방문한 개신교 감리교회 목사들에게 요지의 말씀도 주셨습니다.
대림시기 둘째 부분인 오늘 12월17일은 마태복음을 시작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바로 우리 믿는 이들의 족보이며 뿌리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 족보에 뿌리를 둔 교황님의 한결같은 맹활약은 늘 감동적입니다.
참으로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가톨릭교회는 물론 모든 교회를 통하여 계속되고 있음을 봅니다. 오늘 복음에 소개된 예수님의 족보는 면면히 흐르는 살아 있는 하느님의 장강(長江)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족보에서 후렴처럼 끊임없이 반복되는 동사가 “낳았다”입니다. 계속되는 출산이 그대로 하느님의 희망이 반영된 축복의 선물임을 깨닫게 되며 작금의 출산율 저하가 심히 우려됩니다.
이미 제1독서 창세기에서 야곱의 유다에 대한 각별한 축복을 통해 유다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탄생에 중요한 몫에 참여하고 있음을 봅니다. 우연은 없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 모두가 필연적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모두가 ‘신의 한수’ 같은 하느님 구원 섭리의 도구요 유다는 더욱 그러합니다.
“너 유다야, 네 형제들이 너를 찬양하리라. 누가 감히 너를 건드리랴? 유다에게 조공을 바치고, 민족들이 그에게 순종할 때 까지, 왕홀이 유다에게서, 지휘봉이 그의 다리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흡사 이스라엘 야곱의 각별한 신뢰를 받았던 그의 아들 유다를 통해 먼훗날 활약할 메시아 예수님의 모습을 감지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잘난이들 못난이들, 큰 이들 작은 이들, 의인들 죄인들, 유명인들 무명인들 모두를 당신 구원섭리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하느님께는 쓸모없다 버릴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모두가 각자 자리에서 각자의 몫에 최선을 다하게 하십니다.
흡사 묵주끈에 달린 묵주알처럼 하나하나가 족보의 줄에 매어져 있음이 존재이유가 되고 있음을 봅니다. 묵주알이 하나의 묵주끈에 매여져 있기에 존재의미가 있는 것이지 사람도 공동체 족보의 끈에서 떨어져 나가면 무의미한 무명의 존재로 전락할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족보에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지요! 그리스도 예수님이 탄생하기까지 그 아득한 희망의 미래를 내다보며 끝없이 기다렸을 하느님 사랑의 인내와 겸손이 참으로 놀랍고 감사하고 감격스럽습니다.
특히 놀랍고 감격스러운 것은 마리아 성모님에 앞선 인간적으로 참 불우하고 기구했던 네 여인들, 다말, 나합, 룻, 바세바가 이 족보에서 참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말과 라합은 가나안 원주민이고, 룻은 모압 출신 여자요, 솔로몬의 어머니 바쎄바는 다윗의 아내가 되기 전에 히디트 출신 군인 우리야의 아내였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도구로서 우선적 조건은 신분이나 혈통, 도덕군자나 요조숙녀가 아닌, 주님께 대한 충실하고 한결같은 믿음뿐임을 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탄생에 결정적 협조자가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이자 우리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족보는 다음 구절로써 끝납니다. 하느님 사랑의 인내와 겸손의 결정체같은 구절입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어제 수도원 배밭에는 2200 여개의 비료부대가 반입되었고 또 다섯분의 인부들에 의해 배나무들 전지가 시작되었습니다. 한해 배농사의 끝은 새로운 시작의 반복임을 깨닫습니다. 끝은 시작입니다. 마리아를 통해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탄생하심으로 예수님의 기나긴 족보는 끝납니다만, 예수님께로부터 시작되는 교회의 족보가 뒤를 잇고 세상 끝날까지 새롭게 계속될 것이며,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의 족보에 속해 있는 하느님의 한가족, 한식구임을 깨닫게 합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대대로 저희에게 안식처가 되셨나이다."(시편90,1).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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