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의인 성 요셉 “하느님 중심의 삶”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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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선우경 | 작성일2024-12-18 | 조회수167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2024.12.18. 12월18일
예레23,5-8 마태1,18-24
의인 성 요셉 “하느님 중심의 삶”
“오, 하느님이여, 이스라엘 집안을 다스리시는 분이여, 불타는 가시덤불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시고, 산에서 그에게 당신법을 주셨으니, 오소서, 팔을 펴시어 우리를 구원하소서.”
대림2부 12월 18일의 “오 후렴”이자 복음 환호송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에 앞서 '사람을 찾는 하느님', 이것이 진짜 복음입니다. 역사의 엄중한 순간에 개입하시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은 절대 혼자 일하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한 자를 통해 개입하십니다. 수도생활 초기부터 참 많이 강조했던,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끝까지 강조할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오늘 옛 어른의 지혜도 좋은 가르침이 됩니다.
“세월이 사납게 지나갈수록 마음의 중심을 다잡는 것이 알 수 없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일이다.”<다산> 마음이 하느님 중심을 잃었을 때 엄습하는 두려움과 불안입니다. 온전한 삶을 위해 마음의 중심을 잡는 일이, 하느님 중심의 삶이 얼마나 본질적인지 깨닫습니다. “신중하라, 한겨울 살얼음 낀 내를 건너듯. 두려워하라, 사방이 에워싸인 듯.”<도덕경>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한 자는 매사 신중하며 두려워합니다. 부정적 공포의 두려움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의 경외의 두려움입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 중심의 삶의 모범이 오늘 복음의 주인공 성 요셉입니다. 어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어 오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다루며 주인공은 우리 수도원의 주보성인인 성 요셉입니다. 이미 예수님 탄생의 전조가 이미 제1독서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해 예고됩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그의 시대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리라.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르리라.”
바로 이런 예수님 탄생에 앞서 등장하는 의로운 사람 성 요셉입니다. 어제에 이은 화답송 후렴은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날 더욱 간절한 기도가 됩니다. 정말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할 때 정의와 평화의 세상일 것입니다.
“주님, 이 시대에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정의와 평화는 한 실재의 양면입니다. 참으로 정의로워야 평화로울 수 있고, 정의없이는 참평화도 없습니다. 참으로 의로운 사람은 하느님 중심의 정의와 평화의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그 빛나는 모범이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결정적 협조자인 의인 성요셉입니다. 의인 성 요셉의 인품에 대해 나눕니다.
첫째, 의인 성 요셉은 배려의 사람이었습니다. 비상한 사랑이 아니라 아주 상식적인 사랑의 표현이 배려와 존중입니다. 일상에 충실한 사람은 상식적이며 이건 영성 이전의 기본입니다. 좌파나 우파가 아닌 상식과 비상식, 정의와 불의, 진리와 거짓이 분별의 잣대가 됨이 온당합니다. 궁지에 몰린 마리아를 살리기 위한 성 요셉의 사랑이 눈물겹도록 고맙습니다. 사랑의 배려에서 나오는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다음 대목에서 성 요셉의 마리아에 대한 배려의 사랑과 지혜가 빛납니다. 성 요셉을 선택한 하느님의 탁월한 안목이 놀랍고 고맙습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이 대목을 대할 때 마다 떠오르는 불암산에 관한 짧은 자작시입니다. 그대로 성 요셉의 인품에 대한 묘사같습니다. 크고 깊은 사랑에 고요한 믿음의 사람 성 요셉입니다.
“아, 크다 깊다 고요하다 저녁 불암산!”
둘째, 의인 성 요셉은 경청의 사람이었습니다. 순수한 마음, 침묵에 저절로 따라오는 경청의 겸손입니다. 영성생활에 귀기울여 공경하는 마음으로 잘 듣는 경청보다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은 없습니다. 경청의 훈련과 습관이 일상화된 요셉같습니다. 마침내 결정적 순간에 이런 요셉의 꿈에 개입한 주님의 천사입니다. 저는 이를 일컬어 요셉의 태몽이라 칭하고 싶습니다. 주님이 요셉을 얼마나 신뢰했는지 주님은 천사를 통해 당신 속내를 환히 밝히십니다. 말그대로 주님의 모험입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예수는 본디 ‘주님께서 구원하신다’를 뜻하는 히브리말입니다. 어찌보면 우리 믿는 이들 역시 ‘성령으로 잉태된’ 세상 구원의 사명을 지닌 ‘또 하나의 예수’란 생각도 듭니다.
셋째, 의인 성 요셉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자발적 순종의 사랑, 순종의 믿음입니다. 다음 대목을 통해 성 요셉의 순종의 진면목이 잘 드러납니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성 요셉의 지체없는 자발적 순종의 믿음이 하느님께는 얼마나 고마웠겠는지요! 분명 감동하셨을 하느님입니다. 성 요셉의 순종의 응답을 통해 마침내 이사야 예언은 실현되니 마리아를 통한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이다.”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 신비롭고 영예로운 이름 임마누엘인지요! 우리 역시 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또 하나의 임마누엘임을 깨닫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의인 성 요셉을 닮은 배려와 경청, 순종의 사람이 되어, 또 하나의 임마누엘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하여 있사오니, 주님, 이 종의 영혼에게 기쁨을 주소서."(시편86,4).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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