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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하느님의 일’은 인간의 과학과 상식을 ‘초월’합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12-19 조회수100 추천수2 반대(0) 신고

<‘하느님의 일’은 인간의 과학과 상식을 ‘초월’합니다.>

“즈카르야가 천사에게,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하고 말하자, 천사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한편 즈카르야를 기다리던

백성은 그가 성소 안에서 너무 지체하므로 이상하게

여겼다. 그런데 그가 밖으로 나와서 말도 하지 못하자,

사람들은 그가 성소 안에서 어떤 환시를 보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몸짓만 할 뿐 줄곧 벙어리로

지냈다. 그러다가 봉직 기간이 차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였다. 엘리사벳은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루카 1,18-25)”

1)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를

원문대로 직역하면, “제가 무엇으로 그것에 관해 알 수

있겠습니까?”인데, 자기가 믿을 수 있도록 어떤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는 말입니다.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는

자기가 천사의 말을 믿지 못하는 이유를 말한 것입니다.

즈카르야는 자신과 아내 엘리사벳이 너무 늙어서

아기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도 아니고, 믿음이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그가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믿지 못한 것을 잘못이라고(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말을 못하게 된 것은 ‘벌’이 아닙니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라는 말은, 가브리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한 말은 모두 천사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아들이 태어나는 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은, “하느님 말씀은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러니 그 말씀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라는 말을

겉으로만 보면, 믿지 못한 것에 대해서 말을 못하게 되는

‘벌’을 준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아니고, 즈카르야가

요청한 대로 ‘표징’을 준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즈카르야가 갑자기 말을 못하게 된 것이 표징이 아니라,

아기가 태어난 후에 다시 말을 하게 된 것이 표징입니다.

“그 모든 일은 ‘하느님의 일’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표징.

<그런데 왜 표징을 그런 식으로(‘말’에 관한 일로) 주었을까?

아마도 세례자 요한의 사명이 ‘선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기의 사명이기 때문에,

표징도 ‘말’에 관한 일로 주어진 것 같습니다.

즈카르야가 사제라는 것을 생각하면, 믿음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은 사제 자격이 없다는 것을, 또 하느님 말씀을 전할

자격이 없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즈카르야는 믿음을 완전히 갖게 될 때까지

‘사제 자격 직무 정지’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가 믿음을 완전히 가진 때는 아기가 태어났을 때입니다.

따라서 그가 아들이 태어나기를 기다린 시간은,

침묵 중에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이 아니라,

반신반의 하면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2) 즈카르야는 말을 못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듣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루카 1,62).

그러나 글을 쓸 수는 있었기 때문에(루카 1,63),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엘리사벳에게 전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믿지 못한 일을 엘리사벳에게 믿으라고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엘리사벳이 자신의 잉태를 ‘하느님의 일’로 믿으면서도,

아기의 사명을 이해하지는 못하고,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총으로만 생각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엘리사벳이 모든 것을 완전히 깨닫게 되고 알게 된 때는

마리아가 방문했을 때입니다(루카 1,40-45).

3) ‘하느님의 일’은 인간의 과학과 상식을 초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과학과 상식이

‘믿음’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 걸림돌을 극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즈카르야의 경우처럼 천사가 나타나서 직접 설명을

해 준다면 좀 더 쉽게 믿음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도움이 없다면,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일이

‘하느님의 일’인지, ‘사람의 일’인지 판단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 됩니다.

<그 일이 고통스럽고 불행한 일이라면 특히 더 그렇습니다.

만일에 지금 어떤 고통을 겪고 있다면, “주님은 나에게

고통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더욱 굳게 믿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필리 4,6-7).”

기도하는 동안에 평화를 얻는 일은

누구든지 금방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 평화는, 하느님의 뜻을 알게 해 주는 깨달음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불행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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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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