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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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12-21 | 조회수31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성령 쇄신 하면 서울의 동성 고등학교가 생각이 납니다. 저 아버지 신부님 대자님이 철야 기도 대표사제로 계셨던 곳입니다. 신부님은 성사 전담 사제로 지금 계십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사람을 꿰뚤어 보시는 것이 무섭습니다. 아니 저와 언제 대화하셨다고 저를 아시지 ?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분은 저의 영적인 상태를 분명히 알고 계시고 증언 하신다는 것입니다. 고 박종철 선생님의 고문 치사를 처음 세상에 밝히신 고 김승훈 신부님도 어머님이 신부님을 찾아가서 대화 도중 저에 대해서 대화 때 분명히 영적으로 읽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영적인 사람들은 영적으로 읽고 증언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엘리사벳이 성모님을 맞이 하시는 장면이 너무 아름 답습니다. 그런데 나이 차이가 엄청 납니다. 추정컨데 30년 이상은 차이가 나 보입니다. 그런데 그 나이 많은 엘리 사벳이 딸같은 성모님에게 극진한 예의로 인사를 합니다. 이렇게 신앙 안에서는 나이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성모님 태중에 계신 아드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엘리 사벳은 알고 인사를 드린 것입니다. 신앙은 혼자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가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나이가 많다고 해서 나이 어린 신자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행위는 신앙이 없다라는 것과 같습니다. 비록 성모님이 태중에 아드님을 모시고 있다고 해서 엘리사벳이 예의를 갖춘 것 보다는 그 여인 안에 성령이 움직이고 하느님의 사람이기에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을 전하는 모습입니다. 사람을 모두 하나로 봅니다. 그래서 성령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아들이 즈가리아라는 이름을 이어 받지 않고 요한이라고 증언하는 것이 그 안에 성령이 같이 움직이고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도 엘리사벳과 같이 증언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증언할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성령이 함께하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이 나의 의지로 신앙 생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성령의 임하심을 항상 청하고 기도해야 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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