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예수님은 ‘기쁨의 주님’이신 분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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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12-22 | 조회수41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39-45)”
1) 여기서 가장 중요한 말은,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라는 말입니다.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 라고 부른 것은, 마리아 태중의 아기를 ‘주님’이라고 부른 것이고, 이 ‘주님’이라는 말은 곧 ‘메시아’를 뜻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라는 말은,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려고 오신 메시아” 라는 믿음을 고백한 신앙고백입니다. 루카복음에서는 엘리사벳이 첫 번째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 즉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 신앙인입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은 바로 그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45절의 “주님께서 하신 말씀”의 ‘주님’은 ‘하느님’입니다. <엘리사벳은 하느님과 예수님을 가리켜서 모두 ‘주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의 신성을 고백했고,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2) 41절과 44절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라는 말은, 엘리사벳 자신의 큰 기쁨을 나타낸 말입니다. <자신의 기쁨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태아가 어찌...” 라고 의문을 가질 사람도 있겠지만, 이 말은 세례자 요한의 기쁨을 표현한 말이기도 합니다. 이 말에서, 요한복음에 있는 세례자 요한의 말이 연상됩니다.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27-30)”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 강생을 기뻐하였고, 또 한 사람의 예언자로서 자신이 메시아의 일을 미리 준비하는 사명을 수행한다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메시아께서 본격적으로 일하심으로써 자신이 ‘작아지게’ 되는 것을 기뻐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 기쁨은 이기심이 하나도 없는, 순수하게 하느님의 인류 구원 사업을 기뻐하는 기쁨입니다.
3) 엘리사벳의 기쁨과 세례자 요한의 기쁨은, “예수님은 기쁨의 주님”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엘리사벳과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이 ‘기쁨의 주님’이라는 것을 증언한 증인들입니다.> ‘기쁨의 주님’이라는 말은, 주님은 영원하고 참된 기쁨의 원천이신 분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우리에게 그 기쁨을 주시는 주님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저는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켰습니다. 제가 그렇게 이들을 보호하여,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말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12-13).”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기쁨’은 ‘구원’을 뜻하기도 하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누리는 기쁨을 뜻하기도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오순절 설교 때에 다음 시편을 인용했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신 분, 당신 면전에서 저를 기쁨으로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사도 2,28).” 또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 나라에 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17).” 신앙생활은 그 기쁨을 향해서 나아가는 생활이면서, 동시에 ‘지금’ 주님 안에서, 또 주님과 함께 그 기쁨을 누리는 생활입니다.
4) ‘성령으로 가득 차’ 라는 말은, 엘리사벳이 성령의 힘에 사로잡혀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외쳤다는 뜻이 아니라, 엘리사벳이 주님에 대해서 증언하고 신앙을 고백할 때 성령께서 도와주셨다는 뜻입니다. 엘리사벳은 분명히 자신의 의지로, 자기 자신의 믿음과 기쁨을 고백했습니다. 성령의 도움은 믿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고, 응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받게 됩니다. 마리아가 ‘메시아 강생’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했을 때,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믿었고, 마리아와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이 모두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고, 자신의 태중에 있는 아기와 마리아 태중에 있는 아기가 나중에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지를 깨달았고, 그래서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령의 인도와 도우심이 작용했지만, 엘리사벳 자신도 ‘믿으려는 노력’으로 ‘응답’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대림 제4주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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