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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 제4주일 다해]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12-22 조회수83 추천수4 반대(0) 신고

[대림 제4주일 다해] 루카 1,39-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등산을 좋아하는 한 젊은이가 산 중턱에서 길을 잃고 밤을 맞게 되었습니다. 어둠 속을 헤매던 중에 그만 발을 헛디뎌 절벽 아래로 미끄러졌는데, 천만다행으로 벼랑 끝에 있는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었지요.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는 큰 소리로 도움을 청했습니다. “거기 위에 누구 없어요? 저 좀 구해주세요!” 하지만 아무리 외쳐도 그 어떤 응답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점점 손에 힘이 빠져 모든 걸 체념할 때쯤, 위에서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여기 있다. 나는 너의 하느님이다. 내가 너를 구해주리라.” 젊은이가 이젠 살았구나 싶어 안도하는데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잡고 있는 나뭇가지를 놓거라.”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젊은이가 주저하자 하느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믿느냐?”. “예, 믿습니다. 그래서 매주 성당에도 나가고 기도도 열심히 합니다.”, “그렇다면 어서 그 나뭇가지를 놓아라.”, 그러자 그 젊은이는 한참을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 위에 하느님 말고 누구 다른 분은 없나요?”

 

웃자고 한 이야기지만, 나도 그 젊은이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하느님 말씀대로 그 나뭇가지를 놓을 수 있을까요? 이런저런 걱정과 두려움 때문에, 내가 바라는대로 해주겠다고 유혹하는 다른 목소리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는지요? 그러니 믿음이 약해지지 않으려면, 세상에 다시 오실 주님을 끝까지 잘 기다리다 맞이하려면, ‘오실 분’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미카 예언자는 세상에 오실 구세주께서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들을 알려주고 있지요. 첫째, 구세주께서는 강대국의 명문가에서 태어나시지 않고 이스라엘의 보잘 것 없는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는데, 그분 존재의 뿌리는 유한한 인간 역사에서 비롯되지 않고, 아득히 먼 태초시절 하느님으로부터 나온다고 합니다. 둘째, 구세주께서는 해산하는 여인의 아기로서, 즉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오신다고 합니다. 셋째, 구세주께서는 왕으로서 다스리고 군림하러 오시는게 아니라, 목자로서 당신 백성을 먹이고 보살피며 참된 행복의 나라로 안전하게 인도하기 위해 오신다고 합니다. 넷째, 구세주께서는 이 세상에 참된 평화를 주시는데, 힘으로 약한 이를 억누름으로써가 아니라 오히려 당신 자신을 내어주심으로써, 즉 당신 자신이 직접 참된 평화가 되심으로써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그 평화에 참여케 하신다고 합니다.

 

한편, 오늘의 제2독서인 히브리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구세주로 이 세상에 오시는 분께서 어떤 소명을 띠고 오시는지, 다시 말해 무엇을 하기 위해 오시는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하느님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심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이 십계명에 담아주신 근본정신인 사랑을 실천하지도 않으면서, 하느님을 ‘주님’으로 섬기며 그분 뜻에 전적으로 순명하지도 않으면서, 자기 만족과 과시를 위해 허영심과 위선으로 제물과 예물을 바치고 그것으로 자기가 하느님께 할 도리를 다했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당신 아들의 희생으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거룩하게 하시어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는 것이지요. 구세주께서는 당신을 통해 그런 하느님의 구원의지가 실현되도록 기꺼이 당신 자신을 ‘희생제물’로 봉헌하신다는 겁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이 가장 조심해야 할 임신초기에 나자렛에서 산골마을 아인카림까지 대략 160킬로미터나 되는 험준한 산길을 서둘러 가신 것도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는 큰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서, 자신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적극적으로 찾으신 겁니다. 늙은 나이에 잉태하여 벌써 임신 6개월차에 접어든 이모 엘리사벳을 사랑으로 돌보는 것이, 하느님께서 그녀와 그 아들을 통해 이루실 일에 적극 협력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여 기꺼이 그렇게 하신 것이지요. ‘내 코가 석 자’인 상황에서 자기보다 힘든 이를 돌본다는 것은, 아무리 하느님으로부터 큰 은총을 받아 감사한 마음을 지녔다고 해도 쉽게 실행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성모님은 기꺼이 그렇게 하심으로써 당신께서 받은 큰 은총을 사랑으로 완성하셨기에 참으로 복된 분이십니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덕행은 참된 믿음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셨습니다. 그것을 믿지 못하는 이들은 자기 힘만 믿고 덤벼들었다가 실패하면 절망하여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지만, 하느님을 굳게 믿으며 그분께서 반드시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실거라고 신뢰하는 이들은 실패를 마주하더라도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끝이 아니라 성공으로 가는 과정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시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의 행복과 구원을 위한 가장 좋은 뜻을 마음 속에 품고 계시며, 반드시 그 뜻을 실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그 구원의 진리를 믿고 기다리면 되지요. 하느님의 뜻은 머리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납득한 뒤에야 실행하겠다고 버티지 않고, 일단 믿고 즉시 행할 때 실현됩니다. 그것이 바로 엘리사벳이 성모님을 두고 “행복하십니다”라고 선포한 이유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그분 뜻에 순명하는 이들에게 행복은 언젠가 조건을 다 갖춘 뒤에 누리게 될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자기 의지와 노력으로 지금 이 자리에서 즉시 누릴 수 있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상태인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기 위한 증거를 요구하지 말고, 수용하기 위한 대가를 바라지도 말고, 믿음으로 받아들여 실행하면 될 일입니다.

 

참된 믿음은 ‘그렇다고 아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과 뜻을 아는 것에 그치면 그분은 내 관념 속에 갇혀계실 뿐이지만, 그분 말씀과 뜻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데까지 나아가면 주님은 내가 사는 그 자리에 실제로 현존하십니다. 그것이 주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그분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지요. 그러니 우리에게 참된 행복을 주시고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느님 말씀을 믿고 따라야겠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실천하는 만큼 깊고 단단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믿는 만큼 행복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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