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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자기처럼 될 것을 믿지 않으면 구하러 내려가지 않는다.
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4-12-25 조회수90 추천수1 반대(0) 신고

 

 

 

 

 

 

2024년 다해 주님 성탄 대축일 낮 미사 

 

 

 

<자기처럼 될 것을 믿지 않으면 구하러 내려가지 않는다> 

 

 

 

 복음: 요한 1,1-18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엘 그레코 작, (1600-1605),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성탄 축하드립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께서 내려오신 이유는 우리를 올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어둠에 속한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요한 1,12-13)
    그렇다면 어떤 이들이 그리스도를 맞아들이는 이들이겠습니까? 그분이 우리를 당신처럼 높여줄 분임을 믿고 받아들이는 이들입니다. 우리도 하느님이 될 수 있음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하느님이 사람이 되심이 의미가 없어집니다. 


    루마니아의 14세 소년 크리스티안 마리안 베키아노(Christian Marian Vecchiano)의 이 이야기는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생생한 예를 보여줍니다. 
아주 좁은 우물 파이프에 세 살 아기가 버려진 우물에 빠졌습니다. 구조대가 도착하였지만, 아기를 구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우물 입구가 30cm로 어른은 들어가 아기를 데리고 올라올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아기는 줄을 붙잡고 올라올 수도 없었습니다. 깊이가 15m나 되었기 때문입니다. 파이프를 깨면 아기 생명이 위험했습니다. 굴착기로 11시간 동안 팠지만, 15m 깊이까지 주위를 파며 내려가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경찰들이 모여있는 이곳을 구경하러 온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크리스티안은 자신이 다리를 묶고 거꾸로 내려가 아기를 잡고 올라오겠다고 말합니다. 처음에 어른들은 말렸지만, 그 방법밖에는 도리가 없었습니다. 크리스티안은 그 어둡고 좁은 통로로 내려가 아기를 데리고 올라옵니다. 부모는 기뻤고 크리스티안도 행복했습니다. 크리스티안은 마을의 영웅이자 루마니아의 영웅이 되었고 현재 결혼하여 아기를 낳고 잘살고 있습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던 크리스티안은 이 일로 국가의 보조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이 이야기는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내려오신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성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동등함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6-8).
    

    하느님께서 하늘에서 땅의 어둠으로 사람이 되어 내려오셨다면 분명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인간을 구하기 위해 오셨다면, 인간도 당신의 모습으로 회복시킬 수 있음을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둠은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요한 1,11-12)


    그런데 누가 하느님 자녀가 되는 권한을 받아들일까요?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만큼 자신도 올라갈 수 있음을 믿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이 되고 하늘에 살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이것이 겸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어둠에만 갇혀있어야 하는 존재라면 하느님께서 왜 인간을 위해 이 어둠 속까지 내려와야 하셨을까요? 가톨릭 교리서(460항)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되셨으니, 이는 사람이 하느님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주위에서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이야기를 많이 봅니다. 
또 난간에 걸린 아기를 목숨을 걸고 구한 영웅들도 많습니다. 이수현 씨는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어도 남의 나라 땅에서 선로에 쓰러진 취객을 도우려다 숨지고 말았습니다. 이들이 믿었던 것은 하나뿐입니다. 
    ‘나도 살 수 있고, 저들도 나처럼 될 수 있다.’ 


    또한 그렇게 구함으로써 자신이 사는 곳에 살 자격을 얻기도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2018년에 한 불법 체류자가 5층 높이 난간에 매달려 있는 아기를 구하기 위해 벽을 타고 올라가 아기를 구했습니다. 대통령은 그를 프랑스에 살 자격이 있다고 하여 프랑스 시민으로 삼고 직장도 구해주었습니다. 우리도 낳을 수 있어야 살 자격도 얻습니다. 


    6살 워커라는 아이는 4살 자기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얼굴에 90바늘을 꿰매야 하는 상처를 입으면서도 끝까지 셰퍼드와 싸웠습니다. 이는 자신도 회복될 수 있고 여동생도 지켜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가족의 일원이 될 자격을 스스로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기가 아닙니다. 우리도 동의하여 예수님의 손을 잡아야 합니다. 이것을 ‘착한 뜻’이라고 합니다. 아기가 무엇보다 엄마의 손을 잡지 않으면 살 수 없음을 아는 것처럼, 우리도 창조자 하느님 구원의 손을 잡지 않으면 살 수 없음을 아는 사람만이 하느님 자녀가 되어 영원히 살게 됩니다.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착한 뜻이 있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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