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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축, 주님 성탄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작성자선우경 쪽지 캡슐 작성일2024-12-25 조회수69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4.12.25.주님 성탄 대축일 낮미사                                        

 

이사52,7-10 히브1,1-6 요한1,1-18

 

 

축, 주님 성탄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땅끝마다 우리 주의 구원을 

 모두가 우러 보았도다.”(시편98,3)

 

방금 부른 오늘 성탄 대축일 화답송 후렴이 참 흥겹습니다. 성탄시기 계속되는 매번 축일 계속될 화답송 후렴들 모두가 흥겹습니다. 이제 주님 성탄은 그리스도교 신자들만 아니라 온 인류의 축제가 되었습니다. 주님 성탄과 동시에 우리도 새롭게 태어났고, 존엄한 품위를 회복하여 다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지와 허무, 무의미에 대한 궁극의 답도 온 세상의 빛이자 생명으로, 희망으로 탄생하신 그리스도 예수님뿐임을 깨닫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생하신 주님 계시기에 살맛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탄생하신 주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무슨 맛, 무슨 재미, 무슨 희망, 무슨 기쁨으로 무슨 힘으로 이 어둡고 험난한 광야인생을 살 수 있을런지요? 주님 성탄날이 되면 늘 생각나는 감동적인 일화가 있습니다. 어제 성탄 밤미사 루카복음을 소재로 아이들이 성탄절에 많은 신자들을 대상으로 연극을 하던중 발생한 일입니다. 여관집 주인의 아들 역할을 한 아이는 약간 부족한 장애아였습니다.

 

연극중 문제는 바로 이때 발생했습니다. 젊은 마리아, 요셉 부부가 여관집을 들어섰을 때, 마리아는 만삭의 몹시 피곤하고 지친 모습이었습니다. 연극중 여관집 주인은 부부의 초라한 행색에 여관집 방이 없다고 매몰차게 거절했고, 쓸쓸히 떠나는 뒷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약간 부족한 주인집 아들 역할을 하던 아이가 난데 없이 부부를 향해 뛰쳐나가며 외쳤다는 것입니다.

 

“방 있어요! 떠나지 마세요. 여기 묵을 방이 있어요!”

 

부족하나 착하기 그지없는 이 아이는 연극 대본에도 없는 대사를 즉흥적으로 외쳤고, 연극은 그 즉시 완전 실패로 끝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관중들은 깊은 감동을 받음으로 역설적으로 연극은 실패가 아닌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일화입니다. 바로 이런 착한 아이들 같은 마음의 구유 안에 탄생하는 아기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어제 성탄 밤미사 루카복음(2,1-14)과 오늘 성탄 낮미사 요한복음(1,1-18)은 극명한 대조와 동시에 참 좋은 보완을 이룹니다. 오늘 요한복음은 어제 밤미사중 루카복음과 같은 들판, 목자, 양떼, 구유등 제대앞 장면과 같은 구체적 사물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이 장면 배후의 깊은 의미를, 진리를 찾아냅니다.

 

그래서 앞서 루가복음의 이야기는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이라 부르고 요한복음과 제2독서 히브리서 말씀은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이라 부릅니다. 둘을 합쳐야 완전한 성탄이야기가 됩니다. 성탄의 기쁜 소식을 내다본 듯 이사야서의 말씀이 그대로 우리의 기쁨을 대변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 구나!”

 

우리가 선포해야 할 구원의 기쁜 소식은 뭡니까? 주님의 성탄입니다. 우리의 희망, 우리의 생명, 우리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다는 복음입니다. 주님께서 절망의 세상에 희망으로, 죽음의 세상에 생명으로, 어둠의 세상에 빛으로 태어 나셨다는 복음입니다. 이를 복음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한마디로 요약합니다. 주님 성탄의 깊은 의미를 나누겠습니다.

 

첫째,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님이자 하느님이십니다. 

바로 탄생하신 예수님의 신원입니다. 요한복음 로고스 찬가 서두가 이를 입증합니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밀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바로 이것이 사람이자 하느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신비스런 신원입니다. 평생 묵상해야 할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신비입니다. 

요한과 쌍벽을 이루는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을 말하는 히브리서의 고백도 참 멋지고 깊고 아름답습니다.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구유에서 탄생하신 가난하고 겸손한 예수님은 이런 분입니다.

 

둘째,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활동적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명사라기 보다는 동사입니다. 만들고, 생산하고, 창조합니다. 바로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 그러합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활동하시는 하느님입니다.

 

셋째,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의 빛이십니다.

사랑의 빛, 믿음의 빛, 희망의 빛, 평화의 빛등 모든 빛의 원천은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어제 빛의 신비, 어둠의 신비에 관한 강론을 기억할 것입니다. 둘은 하나입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빛의 신비이자 어둠의 신비가 됩니다. 요한사가의 빛의 신비를 밝히는 내용이 참 깊고 아름답습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바로 이런 무지가 인간의 불행이자 비극임을 깨닫습니다. 빛이라 다 빛이 아닙니다. 가짜 희망, 가짜 생명, 가짜 희망, 가짜 평화도 무수하듯 가짜 빛도 많습니다. 참빛은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될 때 분별의 지혜요 참빛으로 살 수 있습니다.

 

넷째,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습니다.

육화의 신비는 복음의 절정이자 하느님 사랑의 절정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시니 바로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삶의 영원한 중심인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무지의 어둠을 밝히는 말씀의 빛입니다. 

 

인간의 본질은 탐욕도, 허무도, 무지도, 가난도 아닌 바로 말씀입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없이는 참사람이 되는 길도 없습니다. 이래서 공부중의 평생공부가 말씀공부입니다.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이 다음 말씀에 요약 압축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보고 배워 닮아야 할 분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바로 이런 말씀이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되는 일이 우리의 궁극의 희망이자 전 삶의 목표가 됩니다. 참으로 말씀과 하나될수록 주님처럼 은총과 진리가 충만한 온전한 인간이 됩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신비는 하느님의 신비이자 인간의 신비이고 만물의 신비가 됩니다.

 

모든 신비의 열쇠는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뿐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탄생하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는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은총과 진리로, 생명과 빛으로, 희망과 기쁨으로 충만한 존엄한 품위의 삶을 살 수 있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탄생하신 주님의 축복을 가득 받으시길 바랍니다.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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