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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성탄 대축일 다해]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12-25 조회수54 추천수5 반대(0) 신고

[주님 성탄 대축일 다해] 요한 1,1-18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오늘은 우리 구세주의 탄생을 기뻐하며 기념하는 주님 성탄 대축일입니다. 어제 밤 미사의 복음이 작고 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신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는 동화처럼 신비로운 이야기였다면, 오늘 미사의 복음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신 대사건, 즉 “육화강생”의 신비가 우리에게 갖는 의미에 대한 신앙적인 성찰을 담고 있지요.

 

이 세상이 생기기 전인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성경의 세계관에서는 참된 ‘지혜’가 하느님을, 그리고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성자 그리스도를 가리키지요. 즉 오직 그리스도만이 말씀이라는 형상으로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겁니다. 말씀의 역할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원하시는 것을 즉시 현실로 만드시는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오직 ‘말씀’만으로 당신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창조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에는 하느님의 무한한 능력이 그리고 하느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선물이 자리하고 있지요. 그 분 안에는 또 하나의 귀한 선물이 들어있으니 그것은 바로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빛’입니다. 구세주께서 오시기 전까지 우리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그분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짐작 정도만 할 수 있었지만, 구세주께서 오시어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말씀’으로 하느님의 뜻과 의도를 알려주셨기에 우리는 그 빛이 이끄는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주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충실히 실천하기만 하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겁니다.

 

이상은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덕분에 우리가 누리게 된 ‘결과’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이시며 하느님과 같은 본성을 지니신 그분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사랑 자체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그분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뜻과 의도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죄의 구렁에서 헤매며 고통받는 우리의 비참한 처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살리시려고 직접 이 세상에 오신 것이지요. 그것으로도 모자라 우리와 눈높이를 맞추시어 보다 원활하게 소통하시려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인간의 언어로 말씀해주고 싶으셔서 기꺼이 인간이 되신 겁니다.

 

그런데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말은 단순히 하느님께서 우리 같이 부족하고 약한 인간존재가 되셨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말씀이 지닌 참된 의미는 그 뒤에 이어지는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말씀을 통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지요. 이 말씀을 보다 원문에 가깝게 직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당신께서 오래도록 머무르실 항구한 거처를 마련하셨다’는 뜻이 됩니다. 우리와 ‘몸만’ 함께 계시는 게 아니라, 우리와 ‘잠시’ 동안만 함께 계시다가 떠나버리시는 게 아니라, 함께 먹고 마시고 일하고 자고 하는 이웃 형제 자매의 모습으로 우리의 삶을 영위하고 계신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나 자신보다 나에 대해 더 잘 아시는 것은 물론, 내가 청하기도 전에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까지 이미 다 알고 계시는 겁니다.

 

그런 주님이시기에 언제나 ‘충만함’을 누리고 계십니다. 어느 것 하나도 부족하거나 모자람 없이 차고 넘치는 그분의 충만함은 물질이나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지요. 그분의 충만함은 우리가 감히 그 깊이와 너비를 헤아릴 수 조차 없는 그분의 넓고 깊은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충만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분께서 누리시는 충만한 기쁨과 행복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되고, 그것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크나큰 은총이 됩니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은총에 ‘나도 주님께 사랑을 드릴 수 있다’는 은총이 더해져 완성에 이르는 것이지요. 자기 힘으로 당장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막막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한계와 결핍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이웃을 돌아보는 관심과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귀한 은총과 사랑을 결코 잃지 않습니다. 이리저리 흔들리고 넘어지는 공기인형이라도 바람만 불어주면 절대 쪼그라들지 않는 것처럼, 세상의 풍파에 이리 흔들리고 저리 넘어지는 작고 약한 우리라도 말씀이신 주님을 마음에 품고 따르기만 하면 그 안에 담긴 강력한 권능이 우리를 끝까지 지탱해 줄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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