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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신앙생활은 결코 헛일이 아니라는 것이 우리 믿음입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12-26 조회수48 추천수6 반대(0) 신고

<신앙생활은 결코 헛일이 아니라는 것이 우리 믿음입니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17-22).”

1) 성탄절을 지내자마자 바로 첫 순교자 축일을 지내는 것이

좀 이상한 느낌이 들 수도 있는데, 성탄절은 마냥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만은 없는 날이라는 것, 예수님의 탄생은

사실상 ‘십자가의 길’의 시작이라는 것을 묵상하라는

교회의 가르침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우리를) 구원하려고 인간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당신의 목숨을 속죄 제물로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오직 ‘나의’(우리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신앙인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면서,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십자가의 길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고, 믿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신앙생활의 목적이 아닙니다.

부활과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2)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첫 순교자 스테파노의

순교 장면’은 바로 그 믿음과 희망이 진리라는 것을

우리에게 증언해 줍니다.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사도 7,55-56).”

스테파노가 하늘이 열려 있는 것과 하느님과 예수님을

보았다는 것은, 하느님과 예수님께서 스테파노를

마중 나오신 것을 보았다는 뜻입니다.

이 증언은, 예수님께서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라는 당신의 약속을 지키셨다는 증언이기도 하고,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마태 10,28-31).” 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진리라는 증언이기도 합니다.

<십자가의 끝이 허무한 죽음이 아니라는 것,

또 우리가 하는 신앙생활이 결코 헛일이 아니라는 것,

신앙생활의 목적지는 하느님 나라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증언입니다.

스테파노는 첫 순교자라는 점에서도 중요한 인물이지만,

신앙생활의 목적지를 생생하게 직접 체험하고 증언한

첫 증인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3) 예수님 말씀에서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라는 말씀은,

“사람들이 박해하고 유혹하더라도 신앙이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박해를 받을 수도 있고,

유혹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먹고사는 문제 같은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 때문에

신앙이 흔들릴 수도 있고, 반대로 사는 것이 너무 편하고

좋아서 신앙생활이 느슨해질 수도 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흔들리는 것도, 너무 편안해서

느슨해지는 것도, 전부 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걸림돌입니다.

“증언할 것이다.”는 “증언하여라.”,

또는 “증언할 기회로 삼아라.”입니다.

사실 박해 때가 아니더라도,

신앙생활 자체가 신앙을 증언하는 생활입니다.

“걱정하지 마라.”는,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겠다.” 라는 말씀에 연결됩니다(요한 14,18).

걱정할 일이 생겨서 걱정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걱정만 하다가 믿음이 흔들리는 것은 잘못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간에,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나 혼자다.” 라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신앙인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시고, 성모님이, 주보성인이, 수호천사가,

또 신앙생활을 함께하는 형제자매들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4)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라는 말씀은, 신앙생활은

혼자 하는 외로운 생활이 아니라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생활이고, 성령의 힘으로 하는 생활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신앙인은 하느님께서 한처음부터 당신의 자녀로 선택하시고

뽑으신 성도입니다(에페 1,4).

당신이 선택하신 사람이니, 당신이 끝까지 지켜 주십니다.

바로 그것을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끝까지’는 ‘죽을 때까지’입니다.

견딘다는 말은, 단순히 참는다는 뜻이 아니라,

여기서는 신앙생활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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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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