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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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12-28 | 조회수18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요즘에 여기 저기서 저를 찾습니다. 재발 좀 얼굴 좀 보여 달라고 ..주로 저를 찾는 곳은 성당 식구들입니다. 성탄절에는 저는 전야 미사를 절두산에서 봉헌했고 성탄 당일은 아침에 장이 탈이 나서 한나절 화장실을 왔다갔다 하는 바람에 오전에는 미사 참례를 못했고 저녁에 청년 미사를 참례하였습니다. 그런데 교중미사를 참례하신 아버지께서 말씀주시길 저를 찾는 분이 있다는 말씀주셨습니다. 올한해를 많은 부딛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원인은 미숙입니다. 기도 생활과 묵상 생활, 공부 삼박자가 조화를 이루었어야 하는데 이것이 균형이 깨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생을 한것입니다. 그래서 고요속에서 기도와 묵상,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서 조용히 지내는 것입니다. 가급적이면 고요와 침묵, 기도, 공부, 묵상에 집중하렵니다.
요란한 행위 혹은 소리가 나는 것은 무엇인가 균형이 깨져 있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해서 속빈 강정이라는 말입니다. 말이 많다는 것은 그 안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신부님들의 강론을 보면 더욱 정확히 드러납니다. 한번의 임팩트에 끝입니다. 특히나 시를 주로 사용하시는 신부님들은 더 내공이 쌓이신 분들입니다. 묵상글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대화를 글로 적어 놓은 것과 같습니다. 제가 이 곳 지면에 글을 옮기면서 나름 넘어가고 있는 것이 있다면 글을 쓰고 몇번의 검토를 하지 않고 바로 올린다는 것입니다. 회사 생활하거나 혹은 학교에서 보고서를 제출하게되면 적어도 10번은 반복해서 검토를 하고 하루종일 숙고를 하고 올립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한번에 올립니다. 나를 보이기 위해서 올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대화이기에 그렇게 올립니다. 사람들에게 잘보이기 위해 올리는 것이 아니니 .. 묵상도 사람을 의식하게 되면 주인이 내가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어둠을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어둠은 내 본위로 돌이가기에 폭력이 항상 따르게 됩니다. 언어의 폭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헤로데가 동방 박사로 부터 구세주의 탄생을 듣습니다. 헤로데는 나의 지존을 최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나 이외의 것은 존재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것이 선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최상의 선으로 생각하고 나를 보호하는 것이 최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위협하는 어린 구세주의 출현을 막은 것입니다. 본질적인 문제는 내 안에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기에 그런 참극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기도와 묵상, 공부가 같이 병행하면 고요와 침묵 속에서 생활하면서 성령의 열매를 나의 삶의 터전에서 열매로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항상 염두에 두어야하는 것은 내 안에 주님이 항상 우선하는 삶입니다. 내 안에 주님이 거쳐 하시기 위해서는 고요와 침묵 중에 기도와 묵상, 공부입니다. 이곳 묵상글 중에 친구신부님의 글을 매일 친구되시는 분이 전달해 주시는데 참 몇줄 안되지만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신부님과 잠시 영적으로 대화를 하기 위해서 글짜 크기를 조정해 달라고 그 전달하시는 형제님에게 간곡히 요청드렸고 저의 요청을 들어 주셨습니다. 전달해주시는 형제님도 영적으로 큰 어른이시지요. 그때 신부님과 형제님에게 매우 감사했습니다. 그 신부님은 영적으로 큰 어른이십니다. 말수는 적으면서 하느님의 뜻을 정확히 전달하시니까요. 감사합니다.
헤로데와 같이 죄를 짓지 안으려면 내 안에 주님이 항상 계셔야 합니다. 내안에 주님 현존의 증표는 사랑, 나눔, 용서입니다. 그렇게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한 필요 충분 조건이 규칙적인 기도, 묵상, 공부입니다. 매일 매 순간 주님안에서 항상 행복하세요.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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