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지금도 이 세상에는 베들레헴의 아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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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12-28 | 조회수48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마태 2,13-18)”
1) 헤로데의 모습은, 예수님의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17-20).” 하느님께서는 헤로데 같은 자들도 구원하려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만일에 헤로데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다면, 그도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이 스스로 구원을 거부했습니다. 구원을 거부한 것은 심판을 선택한 것입니다. 헤로데는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자였고, 죄로 죄를 덮으려고 한 자였습니다. <오늘날에도 헤로데 같은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빛보다 어둠을, 선보다 악을 더 사랑하는 것인지, 왜 구원을 거부하고 심판과 멸망을 선택하는 것인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이 인간 세상의 현실이고,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2) 아기들을 죽이라고 명령한 헤로데만 나쁜 것이 아니라, 그 명령에 복종한 군인들도 나쁜 사람들입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나는 군인이기 때문에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라고 변명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변명은 하느님의 심판대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변명일 뿐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악행을 정당화 할 수는 없습니다. 군인은 로봇도 아니고 기계도 아닙니다. 선과 악을 판단하지 않고서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악행에 동참하는 것은 사탄 편에 서는 일이 될 뿐입니다. 사탄 편에 선 자들은 사탄과 함께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3) 우리 교회는 헤로데에게 살해당한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순교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아기들이 예수님을 알았던 것도 아니고, 믿은 것도 아니고, 자신들의 목숨으로 신앙을 증언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은 분명하고, 하느님께서 그 아기들을 특별히 사랑하실 것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지만,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을 지내는 것은, 또 베들레헴의 아기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다고 믿는 것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태 10,42).” 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물 한 잔을 주는 것과 같은 작은 선행도 잊지 않고 보상을 해 주시는 하느님이시라면,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잃은 베들레헴의 아기들에게는 그 희생에 합당한 보상을 해 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았든지 몰랐든지 간에... 그리고 그 희생에 합당한 보상은 당연히 영원한 생명입니다. 혹시라도 “그 아기들은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목숨을 바친 것도 아니고, 신앙을 지키려고 죽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순교자 축일로 지내는 것은 맞지 않다.” 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편협한 생각은 ‘선’이시며 ‘사랑’이신 하느님을 거스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4) 인류 역사를 보면, 종교와 신앙이 무엇이든지 간에 ‘선’과 ‘사랑’과 ‘정의’를 위해서 일하다가 고통을 겪고 목숨을 잃은 이들이 많이 있었고, 오늘날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모두 넓은 뜻에서 ‘베들레헴의 아기들과 같은 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지금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서, 베들레헴의 아기들처럼 정말로 억울하게 살해당하는 아기들이 실제로 많이 있는 것이 불행한 현실입니다. 그 아기들의 목숨을 빼앗는 자들은 모두 헤로데입니다. 우리 교회는(신앙인들은) 선과 정의와 평화의 실현을 위해서 더욱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선과 정의와 평화의 실현은 하느님의 뜻이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은 신앙인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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