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마음의 창, 영혼의 창 “하느님 중심의 내적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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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선우경 | 작성일2024-12-30 | 조회수80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24.12.30.월요일 성탄 팔일 축제 제6일
1요한2,12-17 루카2,36-40
마음의 창, 영혼의 창 “하느님 중심의 내적자유의 삶”
"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제주항공 참사...탑승객 181명 중 179명 사망, 세밑 한파 속에 모처럼 따뜻한 남국으로 여행했던 사람들, 타이 방콕발 제주항공 비행기의 무안공항에 착륙하던중 충돌, 폭발로 일어난 대 참사입니다. 179개 별이, 세상이, 우주가 사라진 것입니다. 이분들을 위해 오늘 아침 연미사봉헌합니다. 성탄축제내 어제 29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에 상상할 수 없는 불행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새벽 강론 쓰는 시간도 참담하고 무거운 마음에 주님의 자비를 청할 뿐입니다.
조속히 사고가 수습된다해도 참혹하게 죽은 사람들의 유가족의 슬픔과 상처는 얼마나 깊을지 가슴이 미어지는 듯 합니다. 참으로 한치도 내다볼 수 없는 우리의 참 허약한, 두렵고 불안한 삶입니다. 하루하루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한 것이 제일이겠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할수록 초연한 무욕의 삶에 내적자유와 부요하고 행복한 삶이겠습니다.
불가의 사고四苦와 사성제四聖諦의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진리에 공감합니다. 생노병사, 인생사고의 삶 자체가 고통이요, 이에서 벗어나는 길은 고집멸도의 진리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집착의 탐욕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기적 나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의 삶만이 탐욕의 집착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고해가 아닌 인생축제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에게는 매일이 하느님 중심의 날, 성탄축제입니다. 예전에 써놨던 “좋은 창 지닌 방 하나만 있어도”란 시가 생각납니다.
“방에 있는 TV, 그림, 사진... 대부분이 군더더기
쓸 데 없는 짐 이보다 임 만드신 창문밖 하늘 풍경 살아 있는 그림
늘 봐도 새롭고 좋네 좋은 창 지닌 방 하나만 있어도 부러울 것 없겠네”<2005.12. >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떠오르는 세상 떠난 그리운 셋째 형님입니다. 이 시를 강론에 올렸던 다음날 셋째 형댁에 들렸을 때 형님 방의 활짝 열린 커텐에 창이 참 맑고 깨끗하여 물었더니 계면쩍게 웃으며 어제 제 강론에서 이 시를 읽었다하는 것입니다. 예전 피정집에 안내할 때 방에 안내 받으면 피정자들이 본능적으로 확인하며 만족하며 반색하는 것이 하늘 향해 활짝 열린 창에 밝고 따뜻한 방입니다. 마음의 창도, 마음의 방도 이랬으면 참 좋겠습니다.
정말 하늘 향해 활짝 열린 창을 지닌 밝고 따뜻한 방이라면 하루종일 방에 있어도 행복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방의 창이 상징하는 바, 바로 하느님 향한 마음의 창, 영혼의 창입니다. 하느님 향해 활짝 열린 영혼의 창, 마음의 창을 지닌 이들이 바로 탐욕의 집착에서 벗어난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한 이들입니다. 무소유의 삶에도 내적자유와 부요를 누리며 사는 무욕의 지혜로운 참 행복한 삶입니다.
정주의 관상수도자들이 늘 거기 그 자리에서 답답해 하지 않고 내적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비결도 이런 마음의 창, 영혼의 창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강론 쓰는 시간은 이런 마음의 창, 영혼의 창을 맑게 씻어내는 시간입니다. 이런 활짝 열린 마음의 창, 영혼의 창을 통해 은총의 햇살, 성령의 바람이 들어오고 아름다운 하느님의 자취도 관상, 관조할 수 있으니 참으로 내적부요에 내적자유의 참 행복한 삶이겠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이런 하느님 향한 넓은 영혼의 창, 마음의 창을 지니고 있는지요?
바로 이의 빛나는 모범이 오늘 복음의 한나라는 여예언자입니다. 앞서의 시메온에 이어 오늘 복음의 주인공인 한나입니다. 나이가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해를 살고서는, 여든 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내면서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오로지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니 한나의 마음의 창, 영혼의 창은 정말 한없이 넓고 깊고 맑고 깨끗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구세주 탄생을 목격한 한나도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예수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중 하느님 향해 활짝 열렸던 영혼의 창을 지녔던 한나만이 예수 아기의 구원자 탄생을 체험한 것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의 한나가 영혼의 창을 지니고 내적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바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투철함으로 세상을,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초연히 바라보며 탐욕이 말끔히 사라진 무욕의 삶을 살았던 한나같습니다. 탐욕의 어리석음이요 무욕의 지혜입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세상도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세상의 무시나 멸시가 아닌 세상에 집착하지 않는 이탈과 초연의 삶입니다. 오늘 복음의 한나는 물론 예수님을 추종했던 모든 성인들의 삶이 이러했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많은 이들이 어리석게도 하느님 향한 영혼의 창을, 마음의 창을 지니지 못했기에, 참 보물 주님을 모시지 못했기에 세상 것들의 집착에서, 탐욕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세상 것들을 추구하지만 결과는 중독에 폐인이요, 여전히 계속되는 영혼의 목마름에 굶주림입니다. 눈들면 언제나 거기 그 자리에 있는, 마음의 창 가득히 들어오는 자나깨나 늘 앞에 있는 정주의 불암산을 볼 때 마다 되뇌이는 자작 고백시입니다.
“늘 앞에 있는 산
늘 앞에 있는 주님
이 행복에 삽니다 나는”<2024.10.25>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집착의 탐욕에서 벗어나, ‘영혼의 창’ 활짝 열린 내적자유와 내적풍요의 참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십니다.
“주님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네.”(요한1,16).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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