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인간은 시간의 주인이신 하느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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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12-31 | 조회수33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요한 1,1-5.9-14).”
1) 지나가는 시간도, 다가오는 시간도,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다가오는 시간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만한 사람도 있습니다. 두 경우 다 하느님이 ‘시간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우리는 ‘시간의 주인’이신 ‘하느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알파요 오메가’이신 분입니다(묵시 1,8). 시작하는 것도, 마치는 것도 전부 다 하느님의 권한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어느 고을에 가서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 하고 말하는 여러분!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허세를 부리며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입니다(야고 4,13-16).”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 라는 말은, ‘내일’이라는 시간에 대해서 아무 권한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내일’이 나에게 주어질지, ‘내일’에도 내가 살아 있을지,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내년’이라는 시간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이다.” 라는 말은, 인간이란 정말로 보잘것없는(아무것도 아닌) 존재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인생은 참으로 허무합니다. 영원하신 주님과 함께하는 인생이 아니라면......
2) “주님께서 원하시면”이라는 말에는 “주님께서 허락하시면”이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을 계획하거나 시작할 때, 그 일을 주님께서 허락하시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어떤 계시를 받아서 명시적으로 허락을 받는 경우가 더러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또 우리 입장에서는 “주님의 뜻에 합당한 일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주님의 뜻에 합당한 ‘선한 일’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그 일은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일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확신하는 경우라도, 결과는 전적으로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3) 바벨탑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창세 11,1-9). 하느님께서는 처음에는 인간들이 탑을 쌓는 것을 내버려 두셨는데, 그것은 인간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회개할 시간을 주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바벨탑을 쌓는 것을 막고 사람들을 흩어 버리신 것은, 사람들이 한창 공사를 하고 있을 때입니다. <거의 완성 단계까지 간 것을 하느님께서 허물어 버리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은, 또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은 것은, 바벨탑처럼 허망하게 무너집니다. 건물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자랑하는 업적들 전부 다, 세속의 불의한 권력들도, 부정하게 모은 재물들도...... 그런 것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된 것도 바벨탑의 경우와 같습니다(마태 24,1-2).>
4) 자신의 인생을 ‘바벨탑을 쌓는 것처럼 사는’ 사람은 정말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지금 내 마음속에 있는 ‘바람’은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선한 희망’인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악한 욕망’인가? <세속에서의 성공과 출세를 바라는 이들이 많은데, 그것이 이기적인 욕심이라면 ‘선한 희망’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헛된 바벨탑을 쌓는 ‘악한 욕망’일 뿐입니다.> 시간의 주인이신 하느님 앞에서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태도는, 만물의 주님이신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은총에 감사드리는 태도로 이어집니다. 진정한 감사는 참된 겸손과 하나입니다.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지고, 누리고 싶은 것을 다 누리는 사람들의 경우에, 말로는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하면서도 잘난 체 하고 교만하다면, 그리고 ‘작은 이들’을 무시하고 업신여긴다면,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는 그 사람의 말은 ‘빈말’이고 ‘위선’입니다. 루카복음 18장 9절-14절에 나오는 바리사이가 바로 그런 위선자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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