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5.01.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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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5-01-02 | 조회수115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25년 1월 2일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이석원 작가의 ‘나를 위한 노래’에서 세상의 행복을 어른의 행복과 아이의 행복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아이는 신나고 재미있으면 행복하지만, 어른은 고통이 없어야 행복하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공감 가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린이가 더 행복한가 봅니다. 행복할 수 있는 이유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른은 고통을 피하면 행복할 텐데, 고통의 이유를 계속해서 만들기에 불행을 더 쉽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가진 것이 적고, 능력과 재주가 없는 것도 고통으로 만들지 않습니까? 가지고 있지 않은 것만을 바라보니 고통이 떠나지 않습니다. 순간순간 주어지는 작은 기쁨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아이의 마음이 행복의 길로 나아가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만 머물면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기쁘게만 살라고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절제하는 것’ 등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서는 사랑이 있음을 말합니다. 러셀 로버츠의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 이라는 책에서는 “인간의 삶이 비참하고 혼란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소유물이 곧 나 자신이라고 착각하기 때문” 이라고 말합니다. 소유하지 않고 절제하면서도 사랑해야 우리는 가짜 행복에서 벗어나 진짜 행복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와 같은 순수함과 더불어 나의 희생도 기꺼이 선택할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가까워지면서 자기 삶이 풍성해지게 됩니다. 세례자 요한의 모습에서 아이와 같은 순수함과 자기희생도 기꺼이 선택하는 사랑을 보게 됩니다. 그는 유다인들의 기대에 맞춰서, 메시아, 엘리야, 예언자라고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에게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의 기대를 따르지 않고, 하느님의 기대를 따릅니다. 즉,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는 것을 기쁘게 따릅니다. 오실 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면서, 세상의 높은 자리보다 낮은 자리를 선택하십니다. 광야에서의 삶이 결코 고통 없는 삶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큰 고통이 동반되는 힘든 삶입니다. 그러나 고통 없는 삶에서 행복을 찾지 않는 그였습니다. 자기희생을 기꺼이 선택하면서 진짜 행복을 향해 나아갔던 것입니다. 고통 없는 삶, 세상에서 인정받는 삶에서만 행복을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의 뜻에 집중하면서 하느님의 기대를 따르는 사람만이 진짜 행복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진실이 신발을 신고 있는 동안, 거짓말은 지구의 반 바퀴를 돌 수 있다. (마크 트웨인) 사진설명: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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