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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참 사람, 참된 우정 <진리이자 빛이신 그리스
작성자선우경 쪽지 캡슐 작성일2025-01-02 조회수62 추천수5 반대(0) 신고

2025.1.2.목요일  

성 대 바실리오(330-379)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329/30-389/90) 기념일

 

 

1요한2,22-28 요한1,19-28

 

 

참 사람, 참된 우정

<진리이자 빛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진리이자 빛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늘 머무를 때 참 사람, 참된 우정이요 무지의 어둠에서 해방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진리 안에 머물러 참 사람, 참된 우정을 살았던 이라면 모두 익명의 크리스찬이라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늘 감동하는 것은 오늘 축일을 지내는 4세기 소아시아 출신의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조선시대의 이이 율곡과 우계 성혼, 손암 정약전과 다산 정약용 형제, 그리고 엊그제 12월31일 선종 2주기 기일을 맞이했던 전임 교황 베네딕도 16세 교황과 절친들과의 우정입니다. 세상을 떠났어도 얼마나 깊은 참된 우정의 향기를 남기는지 참 많이 깨닫고 배웁니다.

 

“Being a Chtistan means learning to be human again”

(크리스찬이 된다는 것은 다시 사람이 됨을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전임 베네딕도 16세 교황의 절친이자 한참 후배인 스위스의 추기경 쿠르트 코흐가 교황의 2주기 기일미사후 인터뷰 한 대목을 어제 하루 종일 마음에 담고 살았습니다. 참된 크리스찬은 참된 사람에 참된 우정의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평생 하루하루 다시 “사람이 되기 위해” 다시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되는" 평생 공부보다 더 중요하고 힘든 공부는 없습니다. 이 대목이 들어있는 인터뷰 전문입니다.

 

“그분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누구나 말하는 것을 경청했던 아주 겸허한 분이었고, 아주 친절한 분이었다. 여러분이 그분의 눈을 들여다본다면, 거기에는 많은 ‘내적 빛(inner light)’이 반짝임을 볼것이다. 크리스찬이 된다는 것은 인간됨의 기반위에서 이뤄진다는 것은 그분께 언제나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둘은 그분께 언제나 함께 갔다. 크리스찬이 된다는 것은 다시 사람이 됨을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가 이의 탁월한 모범이다.”

 

무엇이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라”는 말씀은 역시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인정머리 없는 놈, 싹아지 없는 놈” 소리 들을 정도의 불손하고 무례한 무지무식의 사람이라면 그 인성은 볼 것도 없습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역시 참사람, 참된 우정의 본보기가 됩니다. 성 아타나시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와 더불어 동방의 4대 교부에 속하는 두분간의 우정입니다. 

 

두 분의 출생연도는 같으나 성 대 바실리오는 49세,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는 60세까지 약 10년 정도 오래 사셨습니다. 성 바실리오는 “대大” 자가 붙을 정도로 동방교회에서는 최고로 숭앙받는 분이었으며 그분의 많은 업적들도 놀랍고, 강론들도 그 깊이와 해박함에 경탄을 금치 못합니다. 두분은 참 좋은 보완관계의 절친이었습니다. 바실리오가 아리안 이단에 대해 싸웠던 조직적이고 활동적인 분이었다면 그레고리오는 많이 관상적이고 시적인 분이었습니다. 성 그레고리오의 다음 강론을 통해 그분들의 깊고 아름다운 우정을 엿볼수 있습니다.

 

“아테네에서 공부하는 동안 나는 나의 위대한 친구인 위대한 바실리오의 신중한 행동과 말하는데 있어서 슬기와 완숙함을 보고 그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느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는 서로의 친애감을 고백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 다 같인 지혜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각자가 서로에게 모든 것이 되어, 같은 지붕 아래서 살게 되고, 식탁을 함께 하며, 마음까지 함께 했습니다. 

 

우리 둘의 눈은 한 목적에 고정되고 우리의 친애감은 더욱 깊어져 힘차게 자라났습니다. 우리 사이에는 질투심이 없었고 경쟁을 좋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 경쟁은 누가 일등하느냐가 아닌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그 자리를 양보할 수 있느냐 하는 경쟁이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영광을 자신의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고결한 인품의 성인들인지요! 깊이 들여다보면 하느님의 지혜이자 진리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의 "참 사람되기"와 "참된 우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두분의 삶과 영성은 평생을 공부해도 끝이 없이 풍부하고 깊으리라 생각됩니다. 조선시대 우계 성혼이 절친인 이이 율곡이 작고했을 때 쓴 제문도 감동적입니다. 두분 다 우리나라 선비로서 성균관과 향교의 문묘에 배향된 동국18대명현으로 불릴정도로 존경과 신뢰를 한몸에 받았던 “진리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 형과 나의 정은 형제 사이와 같고, 의리는 사우(師友;스승으로 삼을 만한 벗) 처럼 무거웠습니다. 약관부터 벗하여 이제 35년이 되었는데, 형은 몸이 건강하여 세도의 무거운 책임을 맡았고 나는 늘 병을 앓아 죽음과 이웃하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형은 별세하고 나는 살아있어 나로 하여금 목놓아 울부짖어 하늘을 부르며 통곡하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어지는 제문도 진실하고 절절하기가 단숨에 읽히는 감동적인 명문입니다. 손암 정약전 둘째 형의 별세 소식에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그의 큰 슬픔과 아픔을 통해서 우정의 깊이를 엿볼수 있습니다. 다산의 큰형은 정약현, 셋째 형은 정약종입니다. 정약현의 딸이 정난주, 사위가 순교자 황사영이고 순교성인 정하상 바오로의 아버지가 순교성인 정약종입니다.

 

“오호라, 어질면서도 곤궁함이 이와같을 수 있는가. 원통하여 무너지는 가슴을 호소하니 목석도 눈물을 흘리는데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느냐. 외로운 처지에 손암만이 나의 지기였는데, 이제는 그분마저 잃고 말았다. 앞으로는 비록 깨달은 바가 있다 하더라도 누구에게 입을 열어보이겠느냐.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는 이가 없으면 죽느니만 못하다. 나를 알아주던 형님이 돌아가셨으니 슬프지 않으랴. 경집 240책을 새로 장정하여 책상 위에 두었는데 나는 이 저술을 불살라야 한단 말인가.”

 

역시 진리 안에서의 참 사람이요 참된 우정임을 절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과의 보이지 않는 깊은 신뢰와 우정을 감지합니다. 예수님 없는 요한은 상상할 없듯이 예수님 없는 우리 또한 상상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없이, “당신은 누구요?”에 대답할 수 없는 요한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 안에서 자신의 신원을 확인하는 요한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참 자기를 아는 지혜가 바로 겸손이요 이의 좋은 본보기가 요한입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인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이심전심 예수님을 알아보는 우정의 깊이가 놀랍습니다. 주님과 우정의 깊이와 함께 가는 이웃들과의 참된 겸손에 참된 우정임을 깨닫습니다. 참 사람이, 참된 우정이 되기 위해 늘 진리이신 주님 안에 머물러 우정을 깊이하는 것이 궁극의 답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진리를 깨달은 사도 요한의 권고가 참 적절하고 고맙습니다. 주님께 대한 우정의 깊이가 타인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주님의 애제자 요한이기에 그의 고백을 더욱 신뢰하고 공감하게 됩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러니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래야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의 재림 때에 그분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 받음으로 진리이신 주님 안에서 머물러 주님과의 우정을 깊이함은 물론 참 사람이, 참된 우정의 사람이 되어 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날마다 성령의 기름부음과도 같은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과의 우정을 날로 깊이해 주고, 참사람, 참된 우정의 사람이 되어 살게 해 줍니다.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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