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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신앙인은 ‘삶 전부’가 ‘신앙인의 삶’인 사람입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09:22 조회수28 추천수4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마르 3,1-6).”

1) 이 이야기에서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바리사이들이 일부러 데리고 온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지켜보고 있었다.” 라는 말은,

함정을 파 놓고서 예수님께서 그 함정에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누구든지 안식일을 어겼다고 고발당하고,

그 고발이 사실이라는 것이 입증되면,

안식일을 어긴 죄인은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했다는 말은 곧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는 뜻이 됩니다.

그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는 일은,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에 관한 일이었습니다.

유대인이라면 당연히 안식일을 지켜야 하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면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이 아니라면 공동체에서 추방하거나

죽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사고방식이었습니다.

<안식일을 안 지키는 자는 죽여야 한다는 구약 율법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고방식입니다.>

2)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그 장애자를 고치는 권능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는데,

그들에게는 그날이 ‘안식일’이라는 점만 중요했습니다.

바리사이들도 생명이 위독한 응급 환자라면 안식일에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이 이야기에 나오는

장애자는 생명이 위독한 응급 환자가 아닙니다.

안식일이 끝날 때까지 치료를 미루어도 되는 상황입니다.

예수님께서 장애자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 모든 상황과 함정을 알고 계셨음을

나타내고, 바리사이들의 악한 의도에 정면으로 맞서서

그들의 함정을 완전히 무너뜨리려고 하셨음을 나타냅니다.

<바리사이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정면으로 맞서신 것은, 글자 그대로 당신의 목숨을 걸고

그들을 회개시키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바리사이들도 회개시켜서 구원해야 할

‘잃은 양들’이었습니다.>

3) 여기서 ‘합당하냐?’는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질문은 “무엇이(어떻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느냐?”입니다.

이 질문은 ‘안식일’이라는 특정 요일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관한 질문입니다.

선 자체이신 하느님의 뜻은, 사람들이 언제나 항상 ‘좋은

일(선한 일)’과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은 안식일에만 하고 다른 날은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모든 날과 모든 시간에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질문에는 “선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악한 일을 하는 것과 같다.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죽이는 것과 같다.” 라는 가르침도 들어 있습니다.

바리사이들이 입을 열지 않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었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 가르침을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침묵은 자기들의 사고방식과 신념이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기를, 또 회개하기를 거부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완고함에 노여워하면서 슬퍼하신 것은,

그들이 멸망을 향해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신 것입니다.

4) 신앙인은 ‘삶 전체’가 ‘신앙인의 삶’인 사람입니다.

주일에만 신앙생활을 하고 다른 날에는 하지 않는다면,

또 교회에서만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 밖에서는 신자가 아닌

사람들처럼 산다면, 그것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경우에는 신앙인이라고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신앙인은 언제나 어디서나 신앙인이어야 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 뜻에 합당한 ‘선과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인의 존재와 신원에 관한 문제입니다.

한 번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야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어떤 곳에서는, 또는 어떤 시간에는, 또는

어떤 상황에서는 신앙인이 아닌 척 하거나, 비신자처럼

행동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스스로

부정하고 부인하는 일이고, 그것은 ‘큰 죄’를 짓는 일입니다.

<‘정치인’의 경우에, 신앙인이라면 신앙인으로서 정치를

해야 하고, ‘군인’의 경우에, 신앙인이라면 신앙인으로서

군 복무를 해야 합니다.

정치를 하는 동안에도, 또 군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신앙인이라는 존재와 신원은 결코 중단되지 않고,

또 신앙생활이 면제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세속 한가운데에 있을 때, 그런 때에 더욱더

자신이 신앙인이라는 것을 드러내면서,

신앙인답게 살아야 하고, 신앙인답게 행동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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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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