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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빛과 함께 복음 전하는 밝은 이 되어야만 / 사순 제5주간 월요일(요한 8,12-20)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4-06 조회수32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빛과 함께 복음 전하는 밝은 이 되어야만 / 사순 제5주간 월요일(요한 8,12-20)

 

어둠속에서만 빛은 빛난다. 짙은 어둠에서 더 빛난다. 그 어두운 어둠이 사라졌기에 빛이 빛으로 빛나는 것이다. 이 어둠은 빛이 사라지면 자연 다시 제 자리를 잡는다. 그 빛이 약해지면 서서히 그렇게 다가오기에. 첫째 날, 그분께서 그 빛 만들기 전부터 어둠은 그렇게 있었다. 어둠에 묻힌 물위에 하느님은 계셨다.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그렇게 하염없이 감돌고 있었다. 이것이 한 처음에 존재했던 그 모습이다. 이렇게 하느님은 한 처음에 어둠과 함께 계셨다.

 

하느님이 어둠을 지배하고 있었다. 말씀은 이렇게 어둠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에 의해 빛 이전부터 지금도 계속 유지된다. 어둠은 단지 그분과 함께 존재하는 것에 불과했다. 이 어둠이 빛에 밀리어 사라지곤 한다.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은 자리를 내어준다. 빛이 들어오면 언제나 비껴준다. 이렇게 어둠은 빛과 함께할 수 없다. 어둠은 빛을 결코 이기지 못한다. 이것이 어둠의 속성이다. 어둠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지만 빛에게는 언제나 그 자리를 양보해야만 한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창조 이전부터 가지고 계셨던 신념이셨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세상의 빛이라신다. 빛이신 그분께서는 우리와 늘 함께하신다. 이는 어둠 속에 있는 우리를 밝게 만든다는 것만을 의미한다. 빛이신 예수님의 그 빛 받으면, 삶은 달라질게다. 무엇이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지? 먼저 밝은 이가 되어야만 한다. 밝은 이는 멀리서부터 밝은 기운이 느껴진다. 그가 오면 환해지고, 말을 안 해도 모두가 편안한 기분이 되리라.


반대로 나타나기만 하면 모두가 피하려 드는 이도 있다. 무슨 말해도 두렵다. 그를 생각하면 왠지 기분이 흐려진다. 되도록 그의 곁에 가고 싶지가 않다. 이것은 윗분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동료들에서도 아랫사람들 가운데에도 분명히 있다. 자신은 어느 편에 속하는지 한 번쯤 돌아봐야 하리라. 빛의 사람은 타인에게 그 빛을 준다. 남에게서 빛을 빼앗기만 한다면 어찌 빛의 사람이라 할지? 어디서 무슨 일하여도 빛을 준다면, 세리와 창녀일지라도 빛의 자녀이다.


빛이 이제 온 천하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그 빛은 한 처음의 태초에 함께 한 그 어둠의 존재를 결코 버리지는 않는다. 그 어둠이 그 빛에 그저 그렇게 잠겨있어야만 빛이 드러나기에. 빛 속에 어둠은 그렇게 그렇게 있을 것이다. 그 빛이 물러나면 어둠은 다시 나타나고, 그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그 빛 속에 또 잠기고 다시 사라지면 그 어둠은 다시금 나타나리라.

 

예수님께서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 하시면서 제자들에게도 세상의 빛이 되라셨다. 성전은 하느님 현존을, 사막은 구름을 기억하게 한다. 죄의 개념이 무뎌지고 정의가 흐려져 가는 오늘날, 고뇌와 좌절의 어두운 밤을 걷고 있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이 더욱 밝게 빛나야 할 게다. 자연을 파괴하며 돈만 숭배하는 오늘날, 세상이 주는 유혹과 협박이 너무나도 크기에 말이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분명히 빛이시다. 우리는 그 빛을 받아야만 할 게다. 그리하여 삶을 빛으로 밝게 해야 한다. 그러면 나를 둘러싼 어둠은 조금씩 조금씩 사라진다. 빛이 존재하는 한 그 어둠은 빛 속에 꼼짝없이 잠길 게다. 완벽한 이는 오히려 부족한 듯이 보이는 법이다. 겸손한 이, 그이만이 결국은 복음을 전하는 밝은 이가 되리라. 기쁨을 얻으면서 나누는 이가 될 게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빛,어둠,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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