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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예수님은 우리를(나를) 살리려고 오신 분입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4-07 조회수41 추천수4 반대(0) 신고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여도 나의 증언은

유효하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또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너희는 사람의 기준으로 심판하지만

나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심판을 하여도

내 심판은 유효하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함께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너희의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은 유효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바로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에 관하여 증언하신다(요한 8,14-18).”

1) “나는 세상의 빛이다.”는,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마태 4,16).”

‘빛’은 ‘생명’을 뜻하고, ‘어둠’은 ‘죽음’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을 죄와 죽음의 억압에서 해방하려고

오신 분, 즉 죄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인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려고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나를) 살리려고 오신 분”입니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빛이 너희 가운데에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빛이 너희 곁에

있는 동안에 걸어가거라. 그래서 어둠이 너희를 덮치지

못하게 하여라. 어둠 속을 걸어가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빛이 너희 곁에 있는 동안에 그 빛을 믿어,

빛의 자녀가 되어라(요한 12,35-36).”

신앙생활은 생명을 얻기 위해서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생활입니다.

그 길은 ‘사는 길’이고, 다른 길들은 모두 ‘죽는 길’입니다.

“빛이 너희 가운데에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라는 말씀은,

생명을 얻으려고 노력할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지금’뿐이라는 가르침으로 해석됩니다.

‘나중’은 없습니다.

지금 노력하지 않으면, 저승에서 후회만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는 사람은

죽음을 향해서 어둠 속을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라는 말씀은, 표현만

보면 죽는 줄도 모르는 채 죽게 된다는 말씀인데,

“멸망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 라고

꾸짖으시는 말씀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2) “나는 세상의 빛이다.” 라는 말씀은,

요한복음 3장에 있는 다음 말씀에도 연결됩니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요한 3,18-21).”

하느님 나라, 구원,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고,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막 사는 것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것이고, 그렇게 어둠 속에서

살고 있는 모습 자체가 이미 심판을 받은 모습입니다.

그 삶에 진리도 없고, 빛도 없고, 생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심판이라는 것은,

이미 시작된 일이고, 진행 중인 일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마음 졸이는 심판이 아니라,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결과를 자기가 선택하는 일입니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어떻게 살려고 노력하는가?”),

바로 그것이 심판의 결과를 인간들이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3) 묵시록에서는 하느님 나라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도성은 해도 달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그곳에 빛이 되어 주시고 어린양이 그곳의 등불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민족들이 그 도성의 빛을 받아

걸어 다니고......(묵시 21,23-24ㄱ)”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도 햇빛도 필요 없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들의 빛이 되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다스릴 것입니다(묵시 22,5).”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빛이,

즉 하느님의 생명이 충만한 나라입니다.

그 생명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주어집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은 그 생명을 받아서,

그 생명 안에서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물론 아직은 시작 단계이고, 미완성 상태입니다.

완성은 그 나라에 들어갔을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끝까지 방심하거나 자만하지 말고

충실하게 주님의 뒤를 잘 따라가야 합니다.

4)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여도 나의 증언은

유효하다.” 라는 말씀과 앞의 5장에 있는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요한 5,31).”

라는 말씀이 모순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두 말씀을 합해서, “법률적인 원칙으로는

자기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는 것은 유효하지 못하지만,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는 것은 ‘법적인 증언’이

아니라 ‘계시’이기 때문에 유효하다.”로 해석됩니다.

<‘계시’는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의 신원과

구원 의지를 드러내시는 일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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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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