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영원한 생명’은 생생하게 살아 있는 현실의 일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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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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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4-10 | 조회수39 | 추천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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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요한 8,51).”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당신이 마귀 들렸다는 것을 알았소. 아브라함도 죽고 예언자들도 그러하였는데, 당신은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하고 있소. 우리 조상 아브라함도 죽었는데 당신이 그분보다 훌륭하다는 말이오? 예언자들도 죽었소. 그런데 당신은 누구로 자처하는 것이오?’(요한 8,52-53)” “내가 나 자신을 영광스럽게 한다면 나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너희가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하고 말하는 바로 그분이시다.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 나도 너희와 같은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알고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킨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다(요한 8,54-5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요한 8,58).”
1)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나를 믿고, 나의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앞의 5장과 6장에도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요한 5,24-2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39-4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 6,47).” 또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우리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1코린 15,19).” <여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는 말에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은총인 ‘영원한 생명’을 예수님께 청하지 않고 현세적인 복만 청하는 것은,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일이고,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2) “아브라함도 죽고 예언자들도 그러하였는데” 라는 유대인들의 말은,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음을 나타냅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교 신앙인들 가운데에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죽지 않고 승천한 사람들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들은 바로 ‘엘리야 예언자’와 ‘에녹’입니다. “그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걸어가는데, 갑자기 불 병거와 불 말이 나타나서 그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그러자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2열왕 2,11).” “에녹은 모두 삼백육십오 년을 살았다. 에녹은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느님께서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창세 5,23-24).” <성경에는 없지만, 유대인들은 ‘모세’도 죽지 않고 승천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대교에는 ‘모세 승천기’ 라는 책이 있습니다. 또 우리 교회는 성모님의 승천을 믿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재림 때에 일어날 일에 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이 말을 합니다. 주님의 재림 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죽은 이들보다 앞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명령의 외침과 대천사의 목소리와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그다음으로, 그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1테살 4,15-17).” <살아 있는 동안에 종말과 재림의 날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게 됩니다.>
3) 신앙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은, 신화도, 공상도, 막연한 이론도 아니고, 생생하게 살아 있는 현실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사순 제5주간 목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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