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순 제5주간 목요일] | |||
---|---|---|---|---|
작성자박영희
![]() ![]() |
작성일2025-04-10 | 조회수50 | 추천수2 |
반대(0)
![]() |
[사순 제5주간 목요일] 요한 8,51-5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언젠가 죽습니다. 그건 가진 재물이 많든 적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누구도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진실’이지요.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 진실을 불편하게 여기며 외면하려 듭니다. 마치 자기가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끝도 없이 재물을 탐하고 집착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웃에게 피해나 상처를 입히게 되어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와중에 하느님 뜻을 거스르게 되어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죽음 이후에 겪게 될 일들을 이야기하는 종교는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이라는 이유로 외면합니다. 자신으로 하여금 죽음을 떠올리게 만드는 요양원, 장례식장 같은 곳에는 ‘혐오시설’이라는 낙인을 찍어 저 먼 곳으로 밀어냅니다. 그런 식으로 죽음을 철저히 외면하며 세속적인 것들에만 신경을 쓰면 자신에게 닥쳐오는 죽음을 어떻게든 피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겠지만 다 부질없는 짓일 뿐입니다. 게다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어떻게든 죽음을 보지 않으려고 회피하는 그들이 다른 이들보다 죽음을 더 많이 신경쓰고 거기에 얽매인 채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죽음을 보는’ 이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시는 말씀을 귀기울여 듣고 마음에 받아들이며 철저히 지키는 이들은 ‘죽음을 보지 않게 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이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들이 자기 신도들에게 하는 거짓말과는 다르지요. 그들은 자기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죽지 않는다고, 자기가 이 세상에 세울 왕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떵떵거리고 살 거라고 신도들을 속입니다. 죽음에 대한 그리고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하여 자기 배를 채우는 ‘장사’를 하는 겁니다. 죽음을, 고통과 시련을 두려워하며 피하려고만 하는 이들은 그런 사이비 교주들의 먹잇감이 되고 맙니다. 자기 삶이 망가지고 가정이 파탄나며 헤어나올 수 없는 깊은 절망에 빠져 자포자기 하게 되는 겁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그분을 배척하는 이들이 바로 ‘죽음을 보기만 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어합니다. 죽음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죽음 이후에 자기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 ‘신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보지 않게 된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시키는대로 따르기만 하면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이 되어 지금의 삶을 영원히 유지하게 되는거라고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그 말씀을 허무맹랑한 헛소리로 여기며 무시한 겁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을 굳게 믿고 그분 뜻을 충실히 따르며 거룩하게 살았던 위대한 신앙의 선조들도 결국 다 죽었는데, 예수님 당신이 뭐길래 당신을 따르기만 하면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헛된 약속을 하느냐는 것이지요.
그러나 ‘죽음을 맛보는’ 것은 ‘죽음을 보는’ 것과 엄연히 다릅니다. 죽음을 맛본다는 건 죽음을 직면한다는 뜻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그 본질을 정확히 아는 이만이 담대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지요. 주님께 대한 믿음을 통해, 하느님 나라에 대한 참된 희망을 통해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며 피하려고만 하지 않습니다. 죽음 이후에도 나라는 존재 자체는 소멸되지 않으며 하느님 나라라는 완전하고 새로운 세상에서 하느님과 함께 영원토록 산다는 걸 알기에, 죽음을 내 삶의 일부로 담담하게 받아들이지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세속적인 것들에 연연하며 지나친 탐욕을 부리지 않습니다. 내 욕망을 채우기보다 하느님 뜻을 따르는 쪽을 선택할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그렇게 점점 구원에, 참된 행복에 가까워지는 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죽음을 보지 않는’ 삶인 겁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그랬듯 주님 말씀을 굳게 믿고 그분 약속을 신뢰하며 그분 뜻을 따르는 길로 한 발 한 발 나아가야겠습니다. 그 길의 끝에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하느님 나라가 있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