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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무지에 대한 답은 예수
작성자선우경 쪽지 캡슐 작성일2025-04-11 조회수49 추천수5 반대(0) 신고

2025.4.11.사순 제5주간 금요일                                                             

 

예레20,10-13 요한10,31-42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무지에 대한 답은 예수님뿐이다”

 

 

“그지없이 사랑하나이다.

 하느님 내 힘이시여.”(시편18,2)

 

새벽 뉴스를 보니 옛 안동교구장이셨던 두봉주교님이 뇌경색으로 쓰러지신후 어제 4월10일 오후 7시47분 종부성사를 받으신후 “감사하다”란 임종어를 남기고 선종하셨다는 소식입니다. 참으로 무수한 전설적 일화를 남기며 기쁘고 자유롭게 성인처럼 사셨던 주교님이셨습니다.

 

자타가 인정하는 명품종교가 천주교입니다. 천주교의 유구한 전통과 미사전례, 그리고 성인들이 명품종교를 이루는 조건입니다. 그러니 천주교를 깊이 잘 믿으면 말그대로 명품신자, 명품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어제 선종하신 두봉 주교님 역시 자타가 공인하는 명품주교님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옛스러우면서도 늘 새로운(ever old, ever new)’, 늘 살아 있는 명품종교가 천주교입니다. 특히 미사전례 시작시, 끝기도 시작하면서 바치는 고백기도는 ‘무지의 해소’에 얼마나 기막힌 처방인지요!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곧 이어지는 가슴을 세 번 치며 바치는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제 탓이요.”는, 우리 무지의 벽을 깨버리고 온유와 겸손에 이르게 하는 참으로 기막힌 말마디입니다. 자기를 아는 겸손이 지혜인데 바로 이런 진정한 참회가 무지의 벽을 허물고 자기를 아는 참 겸손과 지혜에 이르게 합니다. 

 

무지로 인해 극단의 광신, 맹신에 빠지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 지요! 정말 광신과 맹신의 무지에는 백약이 무효요 답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겪는 부정적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래서 기계는 고쳐쓸 수 있어도 사람은 고쳐쓸 수 없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순시기 성무일도 중 하루를 여는 초대송은 평생 화두가 되기도 합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

 

닫힌 마음, 무지로 굳어진 마음을 활짝 열라는 것이요, 열린 마음, 열린 정신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정말 마음의 병중의 병이 무지의 병입니다. 무지의 죄, 무지의 악, 무지의 병입니다. 정말 무지한 이들은 알려줘도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무지에 눈이 가려 살아가는 지요! 이래서 가장 쉬운 것이 남판단하는 것이요 가장 힘든 것이 자기를 아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독서의 예레미야 예언자와 복음의 예수님의 고립무원, 사면초가의 상황이 흡사합니다. 흡사 무지의 악에 포위되어 있는 형국입니다. 무지의 악에 휩싸인 예레미야 예언자의 외침입니다.

 

“저기 마고르 미싸빔이 지나간다!”

 

예레미야가 자주 마고르 미싸빔, 곧 ‘사방에서 공포가!’를 외쳤기에 그에게 이 표현을 별명으로 붙여주었을 것입니다. 거대한 악의 세력에 포위된 예레미야는 좌초되거나 좌절됨이 없이 하느님을 고백하며 찬양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 저를 박해하는 자들이 비틀  거리고 우세하지 못하리이다.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둟어 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고백기도에 이어 즉각적으로 터져 나오는 예레미야의 주님께 대한 찬양고백 노래입니다.

 

“주님께 노래 불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가난한 자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그러니 우리 수도자들이 평생 하루하루, 날마다, 끊임없이, 한결같이, 바치는 찬양과 감사의 성무일도가 무지의 벽을 허무는데 얼마나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 깨닫습니다. 악마들이 질색하는 것이 하느님 찬양과 감사의 노래기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적대적인 일부 유다인들은 아마도 지도층 인사들이자 일부 과격한 광신도들이었을 것입니다.

 

무지에 눈이 멀어 예수님을 몰라보고 하느님을 모독한다 돌을 던지려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의 간곡하고 절박한 호소이지만 무지한 이들에게는 우이독경이었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 대한 두 부류의 반응입니다. 무지에 눈먼이들과 이와 달리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유식한 무지한 유다 지식층 사람들이요 무식한 지혜로운 사람들의 역설적 현실입니다. 지식과 지혜가 함께 하지 않음은 우리가 도처에서 목격하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문득 세기의 현자, 참으로 겸손하고 지혜로웠던 하느님의 사람, 성 베네딕도에 대한 성 그레고리와 대 교황의 평가가 생각납니다. 

 

“그분은 유식한 분이시면서도 무식한 사람이 되었고, 지혜로운 분이시면서도 무지한 사람이 되기 위해 은둔하셨다.”

 

유식과 무식이, 지혜와 무지가 역설적 일치를 이뤘던 베네딕도 성인은 겸손하고 지혜롭기가 예수님을 참 많이도 닮은 분이었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무지의 어둠을 몰아 내시어 주님의 참 겸손과 지혜의 빛에 이르게 하십니다.

 

“주님은 내 등불을 밝혀 주시고,

 당신은 내 어둠을 비추시나이다.”(시편18,29).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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