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어린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루카 19:30)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던 날,
그분은 군마도, 수레도 아닌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어린 나귀 한 마리를 타셨습니다.
사람들은 나귀가 아니라
그 위에 타신 분만 바라보았지만,
예수님은 그 나귀 없이는
예루살렘의 길을 걸으실 수 없었습니다.
묵상 중에 문득,
지금 이 시대의 어린 나귀는 누구일까
질문이 마음을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고 조용한 숨결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엄마 뱃속에 아직 이름도 지어지지 않은
그 작은 존재,
태아.
이 시대는 너무 쉽게 생명을 지웁니다.
환영받기보다는 판단받고,
존중받기보다는 조건을 요구받는 생명들.
하지만 주님은 지금도
그 작은 존재의 심장 박동 속에
조용히 머무시며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 생명이 시작되는 순간,
주님은 마치 나귀를 타셨던 것처럼
작고 연약한 태아와 함께
우리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누군가 “왜 그 생명을 지키려 하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필요하시답니다.”
우리는 그 생명을 구하며
그 생명을 통해
주님을 다시 맞이합니다.
나귀가 주님을 실었던 것처럼,
태아 또한 주님을 잉태한 신비의 자리가 됩니다.
존재 자체로 거룩한 생명.
태아가 직접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생명이 하느님께 닿는 가장 순결한 찬양이 되고,
그 생명을 부정하려는 세상의 소리보다 먼저
돌보다 먼저 울려 퍼질 만큼
강력한 진실의 울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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