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주간 월요일] | |||
---|---|---|---|---|
작성자박영희
![]() ![]() |
작성일2025-04-14 | 조회수62 | 추천수4 |
반대(0)
![]() |
[성주간 월요일] 요한 12,1-11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예루살렘 입성을 며칠 앞둔 시기에 예수님은 당신이 친하게 지내며 아끼시던 라자로 남매의 집을 찾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앞으로 걸어가셔야 할 ‘십자가의 길’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것인지, 예수님께서 그 길을 걸으시는 이유와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고 있던 라자로 남매는 예수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드리기 위한 잔치를 베풀지요. 이는 오늘날 교구 차원에서 머나 먼 타국으로 떠나 선교의 소명을 다할 사제를 위해 환송미사를 봉헌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 배척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고난의 길, 죽음의 길을 걸으셔야 할 예수님께 힘을 북돋워드리고 싶었기에 특별한 자리를 마련한 겁니다.
그런데 잔치가 한창 무르익어 갈 때 쯤, 갑자기 마리아가 값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지고 와서는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아 드립니다. 마리아가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예수님께서 자기 오빠에게 해주신 일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죽은 지 한참 지난 사람을 되살리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시면, 그런 예수님의 인기와 영향력이 군중들 사이에서 더 높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시기 질투하는 반대자들은 그분 때문에 자기들이 누리던 기득권을 잃게될까 두려워 그분을 제거하려고 들겠지요. 예수님께서는 그런 위험까지 모두 감수해가면서 라자로를 되살리시어 마르타 마리아 자매에게 돌려주셨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큰 은혜에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었던 겁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마리아의 그런 행동이 당신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공생활 기간 중에 처음으로 누려보시는 ‘호사’였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자기가 원하는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그분을 찾는 이들은 숱하게 많았어도, 예수님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거나 그분께서 좋아하실 만한 일을 해드리는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기껏해야 자기 나병이 나은 것을 알고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인사를 드렸던 이방인 병자, 그리고 예수님께서 죄 많은 자신을 제자라는 특별한 소명에 불러주심에 감사하며 기쁨의 잔치를 열었던 레위 정도가 다였지요.
그런데 유다 이스카리옷은 마리아의 그런 행동을 탐탁치 않게 여긴 모양입니다. 어찌하여 그 비싼 향유를 제 값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지 않고, 그렇게 의미 없는 일에 낭비해 버리느냐며 마리아에게 핀잔을 주지요. 물론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어드린 향유의 가격 삼백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가 꼬박 삼백일을 일해야 벌 수 있는 거금이었습니다. 유다의 주장대로 그 돈으로 가난한 이들을 도왔다면 많은 이들이 잠시나마 배고픔과 곤궁함을 해결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재물의 힘에 의지한 효과는 금새 사라지고 말지요. 그러나 마리아가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봉헌한 그 행동은 예수님의 마음 속에, 그리고 오늘 복음을 묵상하는 우리들 마음 속에 영원토록 남게 되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참된 사랑의 의미이자 가치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마리아를 비난한 유다는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해 드렸을까요? 슬프게도 없습니다. 부족한 자신을 사도로 뽑아주시고 크나큰 은총과 기쁨을 누리게 해주신 그분을 은전 30냥에 반대자들에게 팔아넘겼을 뿐이지요. 은전 30냥은 120 데나리온, 노동자들이 넉 달을 일해야 벌 수 있는 금액입니다. 즉 유다는 예수님을 그 정도 값어치로 밖에 생각 안한 겁니다. 그러면서 뻔뻔스럽게 마리아를 비난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입니다. 부처 눈에는 모두가 부처로 보이고 돼지 눈에는 모두가 돼지로 보이는 법이지요. 마음 속에 감사와 사랑을 지닌 마리아의 눈에는 예수님이 은인으로 보였지만, 마음 속에 돈 욕심만 가득했던 유다에게는 예수님이 ‘돈 주머니’로, 자기 이익을 취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보였습니다. 지금 내 눈에는 예수님이 뭘로 보입니까?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