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예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첫 번째 방법은 회개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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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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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4-18 | 조회수69 | 추천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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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터’ 라는 곳으로 나가셨다. 그곳은 히브리말로 골고타라고 한다. 거기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도 예수님을 가운데로 하여 이쪽저쪽에 하나씩 못 박았다. 빌라도는 명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달게 하였는데,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 라고 쓰여 있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 도성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그 명패를 읽게 되었다. 그것은 히브리말, 라틴말, 그리스말로 쓰여 있었다. 그래서 유다인들의 수석사제들이 빌라도에게 말하였다.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쓸 것이 아니라, ′나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 하고 저자가 말하였다고 쓰시오.’ 그러나 빌라도는 ‘내가 한번 썼으면 그만이오.’ 하고 대답하였다(요한 19,17-22).”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요한 19,28-30).”
1) 십자가에 관해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1코린 1,18).”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1코린 1,21-25).”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1코린 1,27-30).” “십자가의 신비보다 바오로 사도의 설명이 더 어렵다.” 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든 바오로 사도가 한 말은, “십자가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신 일,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는 일이다.”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께서 그런 식으로 수난을 당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리스인들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믿는 이들’은 하느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인간을 구원하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2) 십자가에 관한 교리가 먼저 있었고, 예수님께서 그 교리대로 수난을 당하신 것은 아닙니다. 사도들과 신자들도 처음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야 비로소 모든 것을 깨달았고, 믿었습니다. 죄의 억압을 받고 있는 인간들을 구원하려고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속죄 제물로 바치신 일이 십자가입니다. 또 죽음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들을 해방하려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목숨을 내주신 일이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나서’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의 사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을 합해서 ‘파스카의 신비’ 라고 부릅니다.>
3) 성금요일의 십자가 경배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묵상하면서 경배하는 일이고, 예수님께서 바라신 대로 각자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겠다고 다짐하는 일입니다.
4)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마주친 여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어라. 보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 아이를 배어 보지 못하고 젖을 먹여 보지 못한 여자는 행복하여라!’ 하고 말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 사람들은 ‘산들에게 ′우리 위로 무너져 내려라.‵ 하고 언덕들에게 ′우리를 덮어 다오.‵ 할’ 것이다. 푸른 나무가 이러한 일을 당하거든 마른나무야 어떻게 되겠느냐?(루카 23,28-31)” 그리고 숨을 거두시기 전에 “목마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9,28). 예수님의 ‘목마름’은 회개하지 않고 멸망을 향해서 가는 인간들에 대한 안타까움입니다. 그래서 성금요일의 십자가 경배는, 경배로만 그칠 일이 아니라, 회개하겠다고 다짐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주님 수난 성금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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