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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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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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4-20 | 조회수110 | 추천수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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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부활 대축일 지나고 나서 ‘엠마오’를 다녀왔습니다. 전임 신부님이 성지순례를 가기로 했는데 출발이 부활 대축일 다음 월요일이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교우들과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제자들은 엠마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저는 성모님의 발현 성지를 다니면서 성모님의 교회에 대한 사랑을 느꼈고, 새롭게 본당 온 지 1달 만에 성지순례를 다녀올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올해에는 수녀님과 부주임 신부님이 엠마오를 다녀올 수 있도록 제가 남기로 했습니다. 부주임 신부님은 과달루페 성지를 다녀오겠다고 합니다. 문득 ‘엠마오’가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엠마오는 ‘장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엠마오는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한다면,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바로 그곳이 엠마오입니다. 비록 제가 어딘가로 떠나지 않더라도, 지금 이곳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바로 이곳이 엠마오입니다. 병자성사를 다녀왔습니다. 2017년에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형제님입니다. 8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형제님의 증상은 조금씩 나빠졌습니다. 처음에는 계단을 오를 정도의 근력이 있었는데 지금은 손가락만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근력만 남았습니다. 손가락만 움직일 수 있는 근력밖에 없었지만, 형제님의 의지는 강했습니다.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형제님은 눈으로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세상과 소통하였습니다.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말로 조명을 조절하였습니다. 몸도 거의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은 살아있고, 영혼은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살고 싶다. 나는 사랑하고 싶다." 사람이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의 ‘존엄’도 사라지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새기신 ‘존엄’은 몸이 움직이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늘 놀라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과학이 이제 사람의 뇌 속 생각을 읽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손을 움직이고, 글을 쓰고, 말을 할 수 있게 돕는 시대입니다.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 같은 기술이 이미 사람의 뇌에 칩을 이식해서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조작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과연 이 과학의 발전을 어떻게 보실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라고, 과학에 사명을 주신다.’ 그 과학이 고통받는 이들의 침묵을 들어주고, 움직일 수 없던 이들의 생각을 세상에 연결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랑의 도구’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듣지 못하는 이의 귀를 열고, 말문을 여셨습니다. 눈먼 이의 눈을 뜨게 하시고, 중풍 병자를 일으키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그 기적은 ‘다른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칩 하나가, AI 로봇 하나가 한 사람의 ‘침묵’을 ‘말’로 바꾸고 ‘고통’을 ‘희망’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기술의 발전 앞에서 무조건 반대하거나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것을 사랑과 존엄의 길로 이끌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칩을 통해 움직일 수 있고, AI 로봇이 손과 발이 되어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가 인간의 손을 통해 실현되는 기적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갈릴래아로 가거라. 거기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왜 하필 ‘갈릴래아’일까요? 그곳은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말씀을 선포하시고, 병든 이를 치유하시고, 마귀 들린 자를 자유롭게 하셨던 곳입니다. 고통받는 자에게 가장 먼저 다가가셨던 곳, 그분의 사랑이 ‘표징’으로 드러났던 첫 자리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과학과 기술의 시대 속에서, 다시 갈릴래아로 가거라." 거기서 다시 하느님 나라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갈릴래아는 오늘날 고통받는 이의 병상일 수도 있고, 뇌에 칩 하나 심을 희망으로 버티는 이의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다시 사랑의 능력, 치유의 힘, 존엄의 회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부활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오늘날, 침묵 속의 환자에게 다가가고, 기술과 인공지능을 통해 손을 내밀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오늘 이 시대의 ‘갈릴래아의 기적’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가면 좋겠습니다. 그분이 먼저 가 계신 갈릴래아로. 그리고 거기서 고통의 얼굴 속에 숨어 계신 주님을 다시 만나고, 그리고 그분을 위해, 다시 사랑하면 좋겠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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