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남에게 증언하는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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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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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4-20 | 조회수45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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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요한 20,1-9).”
1) “죽음은 끝이 아니고, 새 생명으로 건너가는 관문”이라고 믿는 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부활 신앙’의 근거이고, 출발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이렇게 선포하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 우리는 또 하느님의 거짓 증인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죽은 이들이 정말로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되살리지 않으셨을 터인데도,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되살리셨다고 우리가 하느님을 거슬러 증언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고 여러분 자신은 아직도 여러분이 지은 죄 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이들도 멸망하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1코린 15,12-19).”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돌아가셨는데 부활하셨다고 사도들은 증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다.” 라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라고 증언합니다.
2)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해서 ‘새롭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그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4-16).” 신앙생활은, 바로 그 ‘새롭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생활입니다. 그 생명은, 예수님을 믿기 시작할 때 시작되고, 나중에 하느님 나라에서 완성됩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은, 이미 시작된 ‘새롭고 영원한 생명’ 안에서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3)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자마자 사도들에게 가서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라고 말한 것은, ‘빈 무덤’ 자체는 부활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빈 무덤’은 그곳에 시신이 없다는 것을 나타낼 뿐이고,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4) 8절의 “보고 믿었다.” 라는 말은, 무덤이 비어 있다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가, 즉 요한 사도가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나서,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해 냈고(루카 24,8),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다고 해석하는 경우에, “왜 그 믿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언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는가?”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베드로 사도에게도, 또 울고 있는 막달레나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는 것은, 또 돌아간 뒤에도 다른 사도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증언하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더라도, 그것은 ‘머리로만’ 믿는 단계였고, 아직은 ‘온 마음과 온 삶으로’ 믿는 단계에 도달하지는 못한 상태였을 것입니다. 어떻든 예수님의 부활을 첫 번째로 믿고 증언한 사람은, 즉 부활의 첫 증인은 요한 사도가 아니라 막달레나입니다. 막달레나가 부활의 첫 증인이 된 것은, ‘빈 무덤’을 처음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첫 번째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저절로(우연히) 그렇게 된 일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막달레나를 당신 부활의 첫 증인으로 삼으신 일입니다. 아마도 믿음, 사랑, 열성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막달레나가 사도들보다 앞서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주님 부활 대축일 낮미사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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