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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부활의 기쁨은 모두가 함께 누려야 할 모두의 기쁨입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4-21 조회수30 추천수3 반대(0) 신고

 

“그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면서 그 여자들에게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다가가 엎드려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여자들이 돌아가는 동안에 경비병 몇 사람이 도성

안으로 가서, 일어난 일을 모두 수석사제들에게 알렸다.

수석사제들은 원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 이 소식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그를 설득하여 너희가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해 주겠다.’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킨 대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 말이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마태 28,8-15).”

1) 경비병들의 이야기는 그 당시에 있었던 실제 논쟁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부활은 안 믿었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서

다른 곳으로 옮긴 다음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선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경비병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시신을 훔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은 부활하셨기 때문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제3자의 입장에서는 어느 쪽 주장을 진실이라고 믿을까?

유대인들의 주장은 증명할 수 없는, 자기들만의 주장입니다.

그러면 신자들의 주장은 증명할 수 있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증거는

원래 없습니다.

따라서 그런 논쟁 자체는 무의미한 일입니다.

2) 이제 신앙인의 입장에서, 유대인들의 주장을 반박하려면,

또는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부활을 안 믿는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님의 부활은 진실이고 진리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가?

‘빈 무덤’만 내세우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답은 하나뿐입니다. ‘삶’입니다.

‘나의 삶’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명합니다.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니고, 새 생명으로 가는 관문일

뿐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답게 현세의 삶보다 내세의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나아가는

‘나의 삶’이, “부활 신앙은 진리다.” 라고 증언합니다.

논리적으로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나, 어떤 물적 증거를

찾으려고 애쓰는 것은 모두 어리석은 일입니다.

3) “우리는 부활을 살아야 한다.” 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부활은 신앙인의 ‘신앙생활의 목적’이기도 하고,

‘인생의 목표’이기도 하고, 살아가는 ‘힘’이기도 합니다.

신앙인은 어떤 고난과 시련을 겪어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고, 변함없이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신앙인들의 삶’을 보고 감화되어서

믿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신앙인들이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세상 사람들에게

부활과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논쟁’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삶입니다. 삶으로 드러내는 일입니다.>

4) 10절의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라는 지시는, 예수님께서 처음에 활동을

시작하셨던 곳으로 가라는 뜻인데, 처음에 예수님을

따라나설 때의 그 마음으로, 즉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로 해석되기도 하고, 온 세상의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선포할 준비를 하라는 지시로도 해석됩니다.

이 말씀을 ‘가난한 이들’에게 가라는 지시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그렇게만 생각할 것은 아닙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선포되어야 합니다.

어떤 차별도, 또 역차별도 없어야 합니다.

5) 루카복음을 보면, “너희는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루카 24,49).” 라는 지시가

있고, 사도들은 성령 강림 때까지 예루살렘에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마태오복음을 보면,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마태 28,16).” 라는 말이

있고,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올리브산’에서

승천하셨고, 그 산은 안식일에도 걸어갈 수 있을 만큼

예루살렘에 가까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사도 1,12).

이렇게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기록에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한데, 그 차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부활, 승천,

성령 강림 후에 사도들과 신자들은 예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세계 각지로 흩어져 가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6) 부활을 믿는다면, 믿는 대로 살아야 하고,

그 ‘믿음의 길’로 다른 사람들을 초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하고, 함께 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그냥 나 혼자 믿고, 나 혼자 착하게 살아서,

나 혼자서라도 구원받으면 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부활한 다음에 내가 있는 곳에 나 하나밖에 없다면,

그 나라는 하느님 나라가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의 사랑, 행복, 기쁨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때에만 제대로 이루어지고, 제대로 누릴 수 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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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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