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병원에서 퇴원하셔서 좀 더 우리 가운데 머물러 주실 것 같았던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안타깝게도 선종하셨습니다. 살아생전 보여주셨던 수도자요, 사제, 주교요 교황으로 보여주셨던 그 따뜻하고 자애로운 모습, 그 소박하고 순수했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찰라같은 잠시의 만남이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알현했던 순간의 축복은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교황님으로부터 받은 느낌은 참으로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그 연세의 다른 어르신들에게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느낄 수 없었던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이 깊이 느껴졌습니다. 한없이 그윽하고 맑은 눈길, 아버지로서의 깊은 애정과 관심이 담긴 미소 앞에 저는 순식간에 무장해제가 되었습니다. 잠깐 사이의 만남이 제게는 치유의 순간이요, 은총과 축복의 순간이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재림하셨다면, 이런 분위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살아생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행보는 언제나 일관된 것이었습니다. 노숙인들, 난민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자국의 이익에만 몰두하지, 약소국들의 딱한 처지를 나 몰라라 하는 강대국들의 횡포를 강하게 꾸짖으셨습니다. 교회나 수도원이 담 안에 안주하지 말고, 세상의 끝, 변방으로 나아가도록 부단히 촉구하셨습니다. 지난 세월 교회가 약자들에게 저지른 과오와 실책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셨습니다. 자신의 삶과 관련해서 교황님께서는 지극히 겸손하고 탈권위적인 행보를 취하셨습니다. 극단적 청빈의 삶을 몸소 사시면서, 물질만능주의에 젖어 살아가는 교회와 사회 앞에 온몸으로 저항하셨습니다. 2001년 2월 21일 베르골리오 주교님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됩니다. 당시 추기경으로 서임되는 성직자들에게 주어지는 세 가지 특전이 있었습니다. 쾌적한 추기경 관저 제공, 고급 전용차와 운전 기사 제공, 전담 요리사 배치였습니다. 그러나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화려한 추기경 관저를 사양하고 작고 허름한 아파트로 들어갔습니다. 전담 요리사를 두지 않고, 직접 시장을 봐오고 요리를 했습니다. 전용차를 사양하고 언제나 대중교통을 애용했습니다. 언제나 예수회 수도자로서 추구했던 극단적 청빈은 교황으로 선출되고 나서도 한결 같았습니다. 넓고 쾌적한 교황 전용 공간을 사양하고, 일반 교황청 거주 성직자 50여명이 기거하는 공동 기숙사 성 마르타의 집 201호로 자신의 거주지를 정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교회와 세상 앞에 드러내셨던 삶의 모습 중 가장 두드러진 특징 한 가지는 구체성입니다. 청빈을 강론대에서만 외치지 않으시고, 삶으로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교황이 되고 나서도 시종일관 가난하게 사시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교황명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로 정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삶 속에서 일관되게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당신의 80회 생신 때, 고관대작이나 정치인들을 식탁에 초대한 것이 아니라 바티칸 인근 노숙자들과 유기견을 초대하셨습니다. 강론 때도 언제나 청빈의 덕을 크게 강조하셨습니다. “부디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마십시오. 가난은 죄가 아닙니다. 가난을 저주하는 것이 죄입니다.” 당신의 고국 아르헨티나 신자들이 대규모로 바티칸에서 거행되는 교황 즉위 미사에 참석하려한다는 소식을 들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바티칸 주재 아르헨티나 대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렇게 부탁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동포들이여! 비싼 돈 들여 저를 보러오지 마시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해주십시오!” 가난과 관련해 당신의 사제들을 향해서도 일관되게 강조하셨습니다. “가톨릭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더욱 문턱을 낮추고 사제들은 더욱 마음을 열고 낮아져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비천한 사람들,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약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저는 관료나 공무원처럼 행동하는 사제를 원치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 못지않게, 복음의 기쁨을 전하기 위해 달릴 곳을 다 달리셨던 교황님, 아시시 프란치스코 성인 못지않게 가난을 사랑했고, 가난하게 사셨던 교황님, 이제 더 이상 고통도 과로도 없는 하느님의 따뜻한 뜨락에서 세상 편히 쉬시며, 천상복락을 만끽하시길 기도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