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루카 24.32)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를 동반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항상, 걷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걷는 이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함께 걸으며 묻고, 설명하고, 인내해야 합니다." (복음의 기쁨, 제25항)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살도록 초대하셨고, 자신이 그렇게 사셨죠. 오늘 복음은 다시 교황님의 삶을 기억하도록 나를 초대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겪은 깊은 실망과 절망, 그리고 자신들이 속했던 공동체 안에서의 혼란과 상처로 인해 예루살렘에 더 이상 머무를 이유를 잃은 상태였습니다. 좌절된 희망, 무너진 기대, 그리고 믿음의 붕괴 예루살렘은 단지 ‘장소’가 아니라 함께 믿고 따르던 사람들과의 기억, 기대, 그리고 고통이 겹겹이 쌓인 공간이었기에, 그들에게 예루살렘은 더 이상 머물고 싶은 곳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공동체에서 받은 상처, 믿었던 이들의 배신과 침묵, 지도자들의 부패, 하느님께 대한 신뢰의 붕괴까지 모든 감정을 품고 걸어 나간 것이죠. 지금 이 시대, 이 사회, 그리고 우리의 현실 속에서 여전히 엠마오로 향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전쟁터 한가운데 세워진 야전병원이 되어야 한다.” "상처부터 치료해야 합니다. 피가 나는 사람에게 콜레스테롤 수치를 물어보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상처 입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책망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셨고, 말없이 함께 걸으시며 그들의 마음이 열리도록 기다리셨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말씀하시는 ‘야전병원 같은 교회’도 바로 그런 모습이 아닐까요.. 먼저 다가가고, 경청하고, 공감하는 교회 엠마오의 제자들이 공동체로 돌아간 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마음이 뜨거워졌기 때문이겠지요. 그들의 마음이 다시 뜨거워질 때까지 동행하기 위해 나는 오늘 주님과 좀 더 가까이에 머물겠습니다. 내가 누구의 마음을 열고 싶다면 문 앞에 서서 조용히 기다려주는 예수님의 방식이 먼저 되어야 하니까요. 
주님, 제 마음을 뜨겁게 해주소서. 당신의 말씀처럼, 길 위의 그들 곁에 조용히 머물게 해주소서. 지쳐 떠나는 발걸음, 상처로 말 잃은 이들 곁에 제가 함께 걷게 하시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배우게 하소서. 지금, 제가 걷는 이 길이 누군가에게 엠마오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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