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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활묵상 : 지금 교황님의 영혼은 어디 계실까?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5-04-26 조회수35 추천수1 반대(0) 신고

 

"교황님의 영혼은 지금 어디메쯤 계실까?" 하는 묵상을 해봅니다. 모르긴 몰라도 하느님 나라에 벌써 입성해 계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일 먼저 성모님의 품 안에서, 천상재회를 하셨을 것 같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봅니다. "왜 직천국, 직천당 하셨을까?" 하는 추론을 해보고 싶습니다. 먼저 이래야만 우리에게 희망의 표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교황님과 같은 삶을 사셨는데도 연옥에 가시게 된다면 인간의 삶이 하느님 안에서 산다고 해도 절망적인 삶이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교황님의 삶 전체를 봤을 때 "과연 모든 삶이 성자의 삶처럼, 성인의 삶처럼 완벽하게 사셨는가?" 하고 질문한다면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나약한 인간으로서 저지른 죄도 분명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직천국행하셨을까?" 하는 묵상입니다. 

 

그 판단의 영역은 오로지 하느님께만 권한이 유보돼 있습니다. 감히 저 같은 사람이 판단을 할 위치는 아니지만 상상은 해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건 단순히 하느님의 자비라는 그런 명분에 힘입어 하느님 나라로 직행하셨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가셨다면 교황님의 위치에서 지상에서의 삶을 반추해보면 원래 겸손과 특권은 높은 자리에 있을 때 그걸 지키는 게 더 어려운 법입니다. 교황님과 같은 자리에서 겸손을 하려고 하는 노력은 교황님이시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피나는 노력도 전제가 돼야 할 겁니다. 그와 더불어 하느님과 성모님의 은총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직자로 살면서 짓게 된 죄가 있다면 그 죄는 교황님께서 이미 그 죄를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큼의 위대한 삶을 사셨다고 하느님께서 이미 하느님의 전적인 권능으로 그 죄를 묻지 않으셨을 거라고 봅니다. 또한 교황으로 선출되시기 전에도 그렇게 해오셨지만 선출되신 후에도 철저히 자기관리를 해오셨다는 걸 여러 정황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교황님께서도 익히 세상에 알려진 바대로 주기적으로 성사를 보셨다는 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외에도 교황님의 강론을 보면 그 강론 속에 평소 어떤 사고관을 지니고 계셨는지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걸 전체적으로 감안해서 보더라도 그 정도의 삶을 사셨다면 일생을 사시면서 인간적인 본성 때문에 일어나는 사소한 죄까지 과연 하느님께서 물으시겠는가 생각해보면 제가 생각했을 때 오히려 역으로 교황님께서 그와 같은 사실을 미리 하느님께 이러이러한 죄를 범했다고 실토를 하셔도 하느님께서 "내 어찌 너의 그런 죄까지 물을 수 있겠느냐?" 고 하실 것 같다는 묵상을 해봅니다. 

 

저는 이런 추론을 해봤을 때 필히 교황님의 영혼은 하느님의 품에 계실 거라고 확신을 하는 이유입니다. 만약 이런 묵상과 추론은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성직자도 아니기 때문에 얼마나 살면서 많은 죄를 지었겠습니까? 그렇다고 성직자라고 해서 죄를 짓지 않는다고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성직자라면 최소한의 자기 규율의 마지노선은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내가 성직자인데 이 이하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한계선 말입니다. 최소한 성직자라면 그건 일반적인 우리보다는 낮지 않겠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우리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살면서 많은 죄를 짓고 살긴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느님께서 그 죄를 상쇄시켜주실 수 있을 여지만큼의 큰 일을 하면 될 것입니다. 바로 '사랑' 아니겠습니까? 사랑은 허다한 죄도 다 덮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그냥 의도적으로 사랑하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닐 겁니다.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시기, 질투, 분노와 같은 걸 먼저 없애려고 해야 할 겁니다. 현명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걸 지니고 그걸 계속 가지고 있는 한 그 양만큼 비례해서 하느님과 먼 자리에 자신의 영혼이 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결코 그 두 요소는 같이 절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떤 판단을 해야 현명할까요? 바로 그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결국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내 영혼이 하느님 곁에 있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이지 그저 하느님께서 그냥 아무런 공로 없이 그 자리에 불러주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럴 바에야 우리가 하느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노력을 하는 의미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자신의 공로로 얻어지는 건 분명 아니지만 그렇다고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듯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노력도 분명 필요한 것입니다. 그건 제 말씀이 아니고 성경에 그렇게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 정리하겠습니다. 사람마다 남겨진 지상의 시간은 다 제각기 다릅니다. 분명 그 마지막 시간은 누구도 피할 수도 없거니와 반드시 어김없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 시간 안에서 우리가 하느님 품에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잘 살아야 할지 끊임없이 스스로 고민하고 물으며 그 답을 찾아가는 노력을 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 이런 노력의 열매가 천국으로 가는 천국 마일리지가 돼 먼 훗날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씩 준비를 잘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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