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예닮의 여정 "무지에 대한 답은 예수님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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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선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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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4-26 | 조회수34 | 추천수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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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26.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사도4,13-21 마르16,9-15
예닮의 여정 "무지에 대한 답은 예수님뿐이다"
“주님은 나의 힘, 내 노래이시니, 당신이 나를 구하셨도다.”(시편118,14)
무지의 병, 무지의 죄, 무지의 악입니다. 육의 행실이라 일컫는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 모두가 역시 무지의 산물입니다. 반면 성령의 열매라 일컫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 역시 예수님을 닮아갈 때 따라오는 열매들입니다.
결국 무지에 대한 궁극의 답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뿐입니다. 하느님을 그대로 닮은 예수님은 자비롭고 지혜로우시며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입니다. 요즘,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대한 종파를 넘어 칭송과 찬사가 자자합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지난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가리켜 “어려운 분에게 애틋한 마음을 가졌다는 점에서, 불교식으로는 ‘자비보살’이었다”고 평가하며 “왕생극락하시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무지에서 벗어나 참사람이 되는 데 좋은 가르침이 됩니다.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지위나 명성이 아니라, 하루하루 쌓아가는 일상이다.”<다산> “도道에 뜻을 두고, 덕德을 지키고, 인仁에 의지하고, 예禮에서 노닌다.”<논어> 이렇게 산다면 참 멋지고 아름다운, 예수님을 닮은 제자들에 손색이 없는 모습들입니다. 엊그제 받은 미사지향도 의미심장했습니다. “우리 형제가 물질에 대한 욕심을 줄이고, 하느님을 찾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와 더불어 미사 5회 부탁드립니다.” 자나깨나 하느님을 찾는 삶이 무지의 마음병에는 최고의 처방약이겠습니다.
오늘 말씀도 무지에 대한 해결책을 보여 줍니다. 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 결론에 추가된 부분으로 여깁니다. 당신의 부활 발현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않는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은 나타나셔서,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합니다. 빛이신 파스카의 예수님을 만났을 때 무지의 어둠은 완전히 걷혀 치유되고 주님의 온전한 제자들이 되었음을 봅니다. 그대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주님을 모심으로 회개와 더불어 무지의 병이 점차 치유되어 가는 우리들입니다. 이어 당대의 제자들은 물론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교사명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꼭 멀리 밖에 가서만이 아니라 내 일상의 삶의 자리가 세상의 중심이자 복음 선포의 자리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자체가 그대로 존재론적 복음선포의 삶입니다. 무지의 치유는 결코 정적靜的이지 않고 동적動的입니다. 적극적이고 한결같은 복음선포활동과 동시에 무지의 치유은총입니다.
그 좋은 본보기가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의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바 삶의 여정에서 늘 서로 도반이 되어 함께 한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새삼 더불어together 삶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예루살렘 최고의회의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 역시 복음에서 예수님께 질책받은 제자들처럼 무지로 완고해진 사람들임이 분명합니다. 다음 묘사에서 보는 것처럼 이들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큰 충격을 받았음을 봅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을 보고 또 이들이 무식하고 평범한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놀라워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승이자 주님이신 예수님을 그대로 보고 배웠기에, 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체험했기에 이런 담대한 믿음에 용기와 지혜였음을 봅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주님을 모르면 무식할 수 있고 지식을 아무리 많이 쌓아놔도 지혜가 되지 않습니다. 참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때 깨달음의 은총으로 날로 주님을 닮아 자비롭고 지혜로운, 온유하고 겸손한 삶입니다. 무지한 유다 지도자들의 경고에도 주눅들지 않고 확신에 넘친 두 사도의 고백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짓이 진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민심이 천심이라 백성들의 소요를 두려워하여 유다 지도자들은 두 사도를 풀어줬고, 그 일로 백성이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합니다. 12.3 계엄의 내란시 재판중 군부대 몇몇 상관들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국민에, 나라에 충성’하는 마음으로 진실을 증언하는 용기에도 감동받은 일도 떠오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영국의 법률가이자 정치가 순교성인 토마스 모어(1478-1535)입니다.
헨리 8세의 부당함을 밝히고 “왕의 충실한 종이나 하느님의 먼저다(The King’s good servant, but God’s first).” 고백한 후 교수대에서 순교의 죽음을 맞이한 성 토마스 모어입니다. 순교의 죽음을 통해 결국 하느님은 물론 왕에게도 충실했던 하느님의 종 성 토마스 모어의 인품에 감동하게 됩니다.
무지에 대한 궁극의 처방이자 답은 부활하신 예수님뿐입니다. 파스카의 예수님을 닮아갈수록 무지에서 벗어나 담대하고 용기있는 믿음에 자비롭고 지혜로운 삶, 온유하고 겸손한 삶이겠습니다. 무지의 병에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보다 더 좋은 예방제나 치유제도 없습니다.
“당신은 내 하느님, 감사하나이다. 내 하느님,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시편118,28).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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