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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4-27 조회수56 추천수3 반대(0) 신고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 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24-31).”

1) 토마스 사도는, 예수님을 만났다는 다른 사도들의

말 자체는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유령이나 환시를 본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몸에 있는 상처 자국을 직접 보아야겠다는

토마스 사도의 말은, 다른 사도들이 만났다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바로 그분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결코 믿지 못하겠소.” 라는 말은,

토마스 사도 자신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싶어 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믿을 수 없다.”가 아니라, “나도 믿고 싶다.”입니다.>

2)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신 것은 토마스 사도를 위해서,

또 당신의 부활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토마스 사도에게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시면서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라고 말씀하신 것은, 당신이 정말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것, 유령이 아니라는 것,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신 바로 그분이라는 것 등을

직접 확인시켜 주신 일입니다.

요한복음에는 토마스 사도만을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루카복음에는 사도들 모두를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루카 24,38-43).”

3) 안 믿는 사람들은, 사도들이 거짓말을 한 것으로

생각하거나, 예수님의 유령을 보았을 것이라고 의심하거나,

아니면 무슨 환시나 환각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안 믿는 사람들을 믿게 만들 수 있는

물증 같은 것은 없습니다.

또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어떻든 사도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진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들의 증언을 믿고 있고,

예수님의 부활도 믿고 있습니다.

4)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라는 말씀과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라는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보지 않고도 믿어야 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뿐만 아니라 교리 전체가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믿을 수 없는 일을 믿는 것’이고,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는 신앙고백은,

복음서의 핵심이고, 최종 결론입니다.

토마스 사도는 이 신앙을 최초로 고백한 신앙인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할 사도입니다.

5) 30절-31절은 ‘복음서를 쓴 목적’이기도 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메시아, 하느님의 아드님, 하느님’으로

믿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 생명은 ‘죽음을 이기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께 속한 이들입니다(1코린 15,22-23).”

예수님처럼 부활해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온 삶으로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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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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