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2주간 수요일] | |||
---|---|---|---|---|
작성자박영희
![]() ![]() |
작성일2025-04-30 | 조회수71 | 추천수3 |
반대(0)
![]() |
.[부활 제2주간 수요일] 요한 3,16-21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6~17)
이 구절은 많은 교부들로부터 “복음 속의 복음”이라고 불릴 정도로 가톨릭 신앙의 핵심과 정수를 담고 있으며 그 본질을 분명하게 꿰뚫고 있습니다. “사랑의 이중계명” 안에 율법과 계명의 근본정신과 본질이 담겨있다면, 이 구절에서는 하느님과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우리를 향한 그분들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그 사랑에 응답하여 구원받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각 구절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첫째, 하느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당신 마음에 드는 몇 사람만 차별하여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 당신께서 창조하신 이들 모두를 두루 공평하게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당신께 저지른 죄를 심판하고 단죄할 이유로 삼지 않으시고, 오히려 더 많이 사랑해야 할 이유이자 원동력으로 삼으시는 분이 하느님이라는 뜻입니다. 비록 죄를 저지른다고 해도 우리가 하느님께 더 없이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은 변치 않으니, 그분 앞에서 나의 실수와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뉘우치며 고백하고 회개하면 됩니다.
둘째,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너무나’라는 부사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싶은지 그 ‘정도’를 표현하는 것인데, 유한하고 부족한 우리로서는 그 정도를 제대로 가늠하기는 커녕, 얼마나 되는지 헤아리기조차 어렵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분 사랑이 넘치도록 충만하기에,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기만 하면 아무리 극악무도한 대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그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충분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 사랑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셋째,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외아들을 우리에게 내주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도 조건을 달고,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절대 손해는 보려고 하지 않는 우리와는 참으로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부모에게 있어 하나 뿐인 외아들은 자기 자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 존재를 기꺼이 내어준다는 것은 단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이유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기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주신다는 뜻입니다.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사랑, 이것 저것 재거나 따지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사랑만이 완성에 이르러 충만한 결실을 맺게 되지요.
넷째, 그토록 크고 깊은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충만하고 완전한 그 사랑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하느님께 등을 돌리고 있다면 그건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직접적으로 내가 가진 무언가를 잃는 것만이 손해는 아니지요. 내가 누릴 수 있는 참으로 좋은 것들을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나에게 가장 큰 손해이자 내 삶을 무의미하고 부질없게 만드는 ‘심판’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 욕심과 고집에 빠져 하느님께 등을 돌리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겠습니다. 믿음과 사랑으로 그분을 바라보며 그분께서 베푸시는 은총과 축복을 한껏 받아 누려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