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구원의 믿음은 선택이다 “생명이냐 죽음이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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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선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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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4-30 | 조회수86 | 추천수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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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30.부활 제2주간 수요일
사도5,17-26 요한3,16-21
구원의 믿음은 선택이다 “생명이냐 죽음이냐? 빛이냐 어둠이냐?”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시편34.6)
삶은 전쟁입니다. 안팎으로 끊임없이 계속되는 전쟁입니다. 평화를 원하지만 참 역설적으로 끊임없이 안팎으로 펼쳐지는 전쟁입니다. 제가 수도생활 초기부터 주목한 주제 역시 ‘영적전쟁’입니다. 날마다 죽을 때까지 자발적 노력으로 수행해야 하는 영적전쟁입니다. 죽어야 끝나는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라 참 많이 강조했습니다.
삶은 선택입니다. 삶은 선택이자 은총입니다. 좋은 선택은 은총을 전제로하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삶은 부단한 선택의 연속입니다. 타고난 부정적인 것에 절망하기로 하면 끝이 없습니다. 결코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날마다 긍정적인 덕목을 기꺼이 선택하여, 즉 생명을, 사랑을, 기쁨을, 희망을, 감사를, 행복을 선택하여 힘차게 살아갈 때 비로소 밝고 따뜻한 삶입니다. 늘 강조하다 시피 선택, 훈련, 습관을 통해 긍정적인 덕목을 생활화, 일상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적승리의 삶의 비결입니다.
오늘 옛 현자의 가르침도 유익합니다. “누구나 아는 가르침을 아무나 실천하지 못하듯, 보통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보통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다산> 나이들어갈수록 더욱 노력해야 ‘보통’을 유지할 수 있음을 절감합니다. 노력하면 생각나는 대목이 있습니다. 독일의 최초의 장수 여성총리였던 메르켈 평전의 마지막 대목입니다.
‘언젠가 역사책에서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기를 바라는지 묻는 질문에 앙겔라 메르켈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노력했다(She tried)”. 선동정치가 판치는 시대에 앙겔라 메르켈은 묘비명으로 “겸손과 품위”를 선택했다. 이 사실이 메르켈을 대변하고 있다.’
얼마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묘비명이 생각납니다. 무덤 돌판에 새겨진 이름, ‘franciscus’ 이름 하나, 얼마나 단순한 최고의 묘비명인지요! 어느 책 추천사에서 읽은 '이름 석자가 추천사'라는 짦은 추천사도,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책대로 살고 싶지만 '무소유' 책만은 지니고 싶다는 고 김수환추기경의 윗트있는 말씀도 생각납니다. 또 얼마전 글에서 읽은 일화, 조광호 신부에게 정양모 신부가 유리화를 부탁했을 때 한마디 당부, “추상적으로 해주시오”라는 말마디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본질적 깊이의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을 엿보게 합니다.
노력하는 천재, 메르켈입니다. 대부분 많은 위인들이나 거장들은 노력하는 천재들임을 보고 배웁니다. 좌우간 올바른 한결같은 노력이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합니다. “바른 이치에 순종하면 여유가 있고, 욕심을 따르면 위험에 빠지게 된다.”<장자> 진리는, 구원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자리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겪어 내야 할 영적전쟁이요 선택이요 노력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복음 말씀이 참 자명하고 평범하면서도 깊이 있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복음의 요약이자 결정판입니다. 하느님이 너무나 사랑한 세상,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이 세상 누구나에게나 열려 있는 구원의 선택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신 외아들 예수님을 믿는 지극히 단순한 선택이 바로 영원한 생명의 구원입니다. 하느님이 내리시는 심판이 아니라, 사람이 믿지 않아 자초하는 심판임을 깨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구체적으로 구원은 빛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빛이냐 어둠이냐? 갈림길에서 빛이신 주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새삼 빛이신 주님을 선택하여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빛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영적전쟁의 요체는 빛과 어둠, 진리와 거짓의 싸움이기에, 결코 빛에 대한, 진리의 대한 감각이 무뎌지게 하면 안됩니다. 자칫 빛을, 진리를 추구하는 삶을 소홀히 하면 어둠이, 거짓이 들어와 마음 깊이 자리 잡기 때문입니다. 바로 악을 지칭하는 어둠이요 거짓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저절로 영적승리의 삶이 아닙니다. 부단한 진리의 실천과 더불어 빛으로 나아감으로 주님을 닮는 삶, 진리의 빛을 발하는 삶, 영적승리의 삶입니다. 영적전쟁의 요체는 빛과 어둠, 진리와 거짓의 대결입니다.
참으로 만만치 않은 악의 힘, 어둠의 힘입니다. 어둠과 거짓과의 싸움은 얼마나 지난한지요! 작금의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현실을 보면 담박 드러납니다. 빛이자 진리이신 주님과 함께 최선의, 지칠줄 모르는 노력이 함께할 때 어둠과 거짓의 악에 대한 빛과 진리의 선의 승리입니다.
바로 오늘 사도행전은 빛과 어둠, 선과 악, 진리와 거짓의 영적전쟁을 상징합니다. 대사제와 사두가이파와 그 동조자들이 어둠의 세력을 상징한다면 사도들은 빛의 세력을 상징합니다. 대사제와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시기심에 가득차 사도들을 공영감옥에 가두니 언뜻보면 어둠의 승리같습니다만 빛을 상징하는 주님의 천사의 개입과 더불어 빛의 승리로 끝납니다.
“가거라,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
감옥문은 굳게 닫혀 있었는데 사도들은 주님의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나와 이른 아침에 성전으로 들어가 백성에게 생명의 말씀을 가르칩니다. 어둠에 대한 빛의 승리요 함께 하시는 주님의 도움이 결정적입니다. 최선의 기도와 노력을 다할 때 주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빛의 승리, 진리의 승리로 이끄심을 깨닫습니다. 대사제와 사두가파 사람들은 전해 온 소식에 빛의 승리를 인정할 수 뿐이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들을 이들에게 데려왔을 때 백성에게 돌을 맞을까봐 폭력을 쓰지는 않았으니 참 통쾌한 빛의 승리, 주님의 승리, 사도들의 승리입니다. 궁극에는 빛의 승리, 진리의 승리이지만 사도들의 최선을 다한 기도와 노력도 필수입니다. 삶은 영적전쟁입니다. 삶은 선택입니다. 진리이자 빛이신 주님을 사랑하고 선택하여 삶의 중심에 모시고 분투의 노력을 다해 오늘도 영적승리의 삶을 살도록 합시다.
바로 진리와 빛의 선택과 영적승리의 삶을 살기 위한 최고의 처방은 주님을 중심으로 기도와 노동과 공부가 잘 조화된 일과표의 준수입니다. 빛과 진리의 삶, 영적승리의 삶의 일상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일과표 준수의 은총입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빛과 진리의 구원의 삶, 영적 승리의 삶으로 이끌어 줍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시편34,9)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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