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무엇을 얻기를 바라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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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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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5-02 | 조회수72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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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요한 6,2-6).”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요한 6,11-15).”
1)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빵의 기적’ 이야기는 다른 복음서들에 있는 이야기와 조금 다릅니다. 공관복음에서 군중은 ‘배고픈 사람들’이고,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기 위한 기적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요한복음에서는 배고픈 사람들이 아니라 ‘표징을 찾는 사람들’이고, 당신이 ‘어떤’ 분인지 계시하기 위한 기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생명의 빵’이신 분”이라는 것을 계시하신 기적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에 없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따라서 요한복음에서 이 이야기는 뒤의 26절-27절의 말씀에 연결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요한 6,26-27).”
2)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던 일을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에 그들이 바란 대로 예수님이 그들의 임금이 되어 주신다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매 끼니마다 기적을 일으켜서 배불리 먹여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생계를 위해서 일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사람들은 정말로 그런 생활을 원했던 것일까?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 그런데 듣자 하니, 여러분 가운데에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일에 참견만 하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시하고 권고합니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2테살 3,10-12).” <하느님 나라는 노동 자체가 아예 없고 모든 사람이 놀기만 하는 나라일까?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이쪽 세상에서 죽도록 일만 하고, 정당한 품삯을 못 받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놀기만 하는 나라를 희망할 수도 있겠지만, 하느님 나라는 일 차제가 없는 나라가 아니라, 더 고생하는 사람도 없고, 더 편하게 지내는 사람도 없는 나라, 부당하게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가는 사람도 없고, 남보다 덜 받는 사람도 없는 나라, 똑같이 일하면서, 똑같이 배불리 먹고, 똑같이 행복한 나라일 것입니다.>
3) 7절에 있는,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라는 필립보 사도의 말은,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고, ‘주님의 권능’으로만 가능한 일이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9절의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라는 안드레아 사도의 말은, “사람들을 먹일 빵이 없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오천 명이 넘는 군중에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사실상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기적’이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하느님의 일”입니다.>
4) 이야기 속의 군중은 몸을 배부르게 하는 빵만, 즉 ‘썩어 없어질 양식’만 찾다가 모두 예수님 곁을 떠나버렸습니다(요한 6,66). 그때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라고 물으셨습니다(요한 6,67). <떠나고 싶으면 떠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하시는 질문입니다. 영혼 구원과 영원한 생명에는 관심이 없고,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만 바라다가 실망하고, 신앙생활을 중단하는(냉담자가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부활 제2주간 금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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