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일용할 양식을 나누어 먹는 사랑 실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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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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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5-05 | 조회수43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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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호수 건너편에 남아 있던 군중은, 그곳에 배가 한 척 밖에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를 타고 가지 않으시고 제자들만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티베리아스에서 배 몇 척이, 주님께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 빵을 나누어 먹이신 곳에 가까이 와 닿았다. 군중은 거기에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그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요한 6,22-29)”
1) 예수님을 찾아다니는 군중의 모습은 ‘목자 없는 양들의 간절함’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그들을 가엾게 여기셔서, 그들을 위해서 ‘목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마르 6,34).”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영적인 목자’가 되어 주셨는데, 그들이 원한 것은 ‘영적인 목자’가 아니라 자기들을 날마다 배불리 먹여 줄 ‘현세의 임금’이었습니다(요한 6,15). 그들의 간절함은 ‘방향이 잘못된’ 간절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엾게 여기시면서도 그들의 간절함을 올바른 방향으로 바로잡아 주려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라는 말씀은, 산상설교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 6,19-21).” 이 말씀은, 허무하게 사라질 것들을 찾지 말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라는 가르침입니다.
2) 바오로 사도는 신앙인들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콜로 3,1-5).” 바오로 사도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이 지상 천막집이 허물어지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건물 곧 사람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을 하늘에서 얻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2코린 5,1).” 지금의 몸과 지금의 인생은 ‘땅에서’ 잠시 머무는 임시 거처일 뿐입니다. 신앙인은 ‘하늘에서’ 영원한 집을 얻기를 희망하는 사람입니다. 하늘의 새 생명을 얻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표입니다.
3) “그러면 우리가 날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라고 기도하는 것은 무엇인가?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라는 가르침과 ‘주님의 기도’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은, 하느님 나라에 잘 도착하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한 양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용할 양식’을 청하는 주님의 기도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라는 가르침은 모순되지 않습니다. <만일에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늘 배불리 먹고 즐기는 일만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또 그런 마음으로 주님의 기도를 바친다면, 그것은 기도를 바치는 것이 아니라, 헛된 탐욕일 뿐입니다.>
4) 지금 가난과 질병 같은 여러 가지 고통과 불행을 겪고 있다면, 그 고통과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고통과 불행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좋은 일(선한 일)입니다. 그런데 만일에, 정말로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먹을 것을 주지는 않고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라는 말만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악한 일’이고, 사랑을 거스르는 죄를 짓는 일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고 싶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또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는 사람에게 자신의 것을 내주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부활 제3주간 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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