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3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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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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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5-06 | 조회수48 | 추천수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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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간 화요일] 요한 6,30-35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나를 논리적, 이성적으로 납득시키고 이해시켜서, 즉 ‘나를 믿게 만들어서’ 믿는 것일까요?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대로, 내가 믿고 싶은대로 믿는 것일까요?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참된 양식을 얻고 싶으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믿으면 된다고 하셨는데, 군중은 그 ‘믿음’마저도 예수님께서 자기들로하여금 갖게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애초에 스스로의 의지와 결단으로 예수님 말씀을 따라 볼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누군가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손해나 희생이 따르더라도 그의 말과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잘 견디고 지나가면 결국엔 그가 나에게 더 좋은 것을 가져다주리라고 신뢰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을 찾아다니던 사람들은 그 어떤 손해나 위험부담도 감당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입만 벌리고 가만히 앉아서 예수님이 참된 생명의 양식을 떠서 먹여주시기만 기다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 안일하고 수동적인 마음으로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합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군중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자기들이 믿을 수 있게, 그럴만한 근거를 보여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요구를 하는 것 자체가 이미 틀려먹었습니다. ‘당신이 뭔가 놀랍고 대단한 기적을 보여주면 우리가 한 번 믿어볼께’라고 선심쓰듯 말하는 모습에서 애초에 그들에게 믿을 의지 자체가 없음이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조건을 내걸고 그걸 충족시켜주면 당신 말을 믿겠다고 하는 건 믿음이 아니라 ‘거래’입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맺어야 할 관계는 조건에 따라 좌우되는 거래관계가 아니라,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과 신뢰의 관계입니다. 그래야 내 삶을 그렇게 이끄시는 하느님의 뜻을, 나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의도를 비로소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음으로부터 참된 믿음이 시작되는 겁니다.
예수님을 찾아다닌 이들이 자랑스럽게 말한대로, 그들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없는 척박한 땅에서 하느님의 보살핌과 보호 덕분에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확실한 표징을 보여주셨는데, 그들은 그 표징을 알아보고 하느님을 참되게 믿었는지요? 그분께 대한 믿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었는지요? 그러지 못했습니다.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지 못하고 자기들이 누리는 것을 그저 당연하게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계시며 보살펴주신다는 감동적인 사실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평하며 우상숭배에 빠져 그분을 배신하기도 했습니다. 하느님의 애달픈 외침을 무시하고 고집스럽게도 악한 길을 계속 걸었습니다. 그 결과 ‘만나를 먹고도 죽었습니다’.
그러니 물질적인 빵만 찾지 말고, 육신의 생명을 연장하는데에만 관심을 두지 말고, 기도를 통해 참된 생명의 빵이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또한 사랑과 자비를 적극적으로 실천하여 ‘세상에 생명을 주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에 적극 협력해야 합니다. 내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소명을 다하면, 주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어 영원한 생명과 참된 행복을 주십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나에게 생명의 빵이 되십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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