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성체가 나에게 예수님께서 남겨놓으신 가장 큰 표징이 되려면!
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5-05-06 조회수39 추천수1 반대(0) 신고

 

 

  

 

2025년 다해 부활 제3주간 화요일 

 

 

 

<성체가 나에게 예수님께서 남겨놓으신 가장 큰 표징이 되려면!>

 

 

 

복음: 요한 6,30-35

 

 


LORENZETTI, Pietro 작, (1325)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남겨놓는 가장 큰 표징이 성체성사임을 밝히십니다. 군중은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미 모세의 기적이 5천 명을 먹이신 기적으로 실현되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나를 내린 모세는 믿으면서도, 빵 다섯 개로 5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은 좀처럼 믿기 어려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표징입니다. 성체성사를 영하면 결코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게 되는 것이 표징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절대 불가능한 40년 동안 만나를 먹고 바위에서 물을 마시게 된 것이 표징이 된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배고픔과 목마름을 느끼지 않게 되었나요? 

 

 

    우리는 여기서 말하는 배고픔과 목마름이 육체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성체를 영해도 여전히 먹고 마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체를 영함으로써만 가능한 배고픔과 목마름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생존 욕구’입니다. 모든 죄는 이 생존 욕구에서 비롯됩니다. 삼구, 곧 세속-육신-마귀라고도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이 배고픔과 목마름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선악과를 바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것을 바쳤다면 생명 나무를 먹음으로써 뱀이 자아내는 욕망들을 이겨내는 기적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믿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18세기 말 가난한 항구 도시 더블린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술집으로 가득했습니다. 마티 탈보트는 열두 살부터 선창(船倉)에서 일하며 받은 급료를 대부분 술집에 쏟아부었습니다. 스물여덟 살이 되던 1884년 어느 토요일, 주머니가 빈 그는 다시 빚을 내 술을 사려 했지만 친구들마저 등을 돌렸습니다. 문전박대를 당한 채 거리에서 멍하니 서 있던 그는 문득 어린 시절 들었던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마티야, 너를 배부르게 할 술이 아니라 참된 빵이 있다.” 그 길로 그는 가까운 성당으로 달려가 고해성사를 청했습니다. “저는 술 때문에 제 삶을 망쳤습니다. 오늘부터 3개월만 금주하도록 서약하겠습니다.” 사제는 조용히 미사 시간을 알려 주며 덧붙였습니다. “매일 새벽 성체를 모셔라. 예수님께서 네 허기를 채워 주실 것이다.”

 

 

    그날부터 마티는 새벽 5시 30분이면 길바닥에 꿇어앉아 성당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차가운 돌바닥에서 엎드려 기도하는 동안 술에 대한 갈증이 끓어오를 때면 그는 십자가를 꼭 움켜쥐고 중얼거렸습니다. “주님, 오늘 하루만 더 견디게 하소서.” 새벽 미사에서 성체를 모신 뒤 그는 폭풍이 잦아든 바다처럼 고요해졌습니다. 처음 서약했던 3개월이 지나자 그는 다시 6개월을, 1년을, 결국 평생을 주님께 약속했습니다. 그의 회개를 놀랍게 만든 것은 ‘채우시는 주님’이었습니다. 성체를 영한 날에는 중독의 공허함 대신 말씀과 기도로 충만해졌고, 남은 시간에는 일꾼 품삯을 모아 가난한 이웃과 해외 선교회에 익명으로 기부했습니다. 동료들이 알아챘을 때, 그는 이미 자신의 침상을 천 조각으로 덮어 매일 밤 회개와 보속의 사슬을 몸에 감고 있었습니다.

 

 

    1925년 6월 7일 일요일, 마티는 평소처럼 성체를 모시기 위해 도미니코 수도회 성 사비오르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성당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그랜비 레인 (Granby Lane)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졌습니다. 응급 도움을 받기 위해 외투를 벗겼을 때, 그의 허리에는 굵은 사슬이, 팔에는 작은 채찍 자국이 드러났습니다. 철야 성체조배와 보속으로 단련된 그 삶은 세상에는 감춰져 있었지만, 주님 앞에서는 순금처럼 빛났습니다. 장례 미사에서 사제가 전했습니다. “마티는 40년 동안 단 한 방울의 술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그는 매일 성체 안에서 배고픔과 목마름을 완전히 채웠고, 그 힘으로 자기를 이기는 은총이 무엇인지 증명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성체를 통해 ‘생존 욕구’라는 깊은 허기를 치유 받은 한 평신도의 증언입니다. 세속·육신·마귀의 유혹이 가장 치열했던 자리에서, 그는 매일 미사 한 번으로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성체 앞에 무릎을 꿇는 순간, 주님께서 “내가 생명의 빵이다.”(요한 6,35)라고 하신 약속이 실현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마티 탈보트 가경자의 길은 화려한 기적이 아니라, 성체를 중심에 둔 ‘작은 충실함’이 40년을 관통하며 완성한 거룩한 여정이었습니다.

 

 

    이와 연계하여 수많은 사례들을 댈 수 있겠습니다. 믿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신해 거의 2주 동안 굶김을 당해 죽으면서도 “그 사랑 영원하시다.”라는 시편구절로 주님을 찬미했던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 그리고 첫 영성체로 욕망에 목이 마른 알렉산드로의 칼에 수십 차례 꿰뚫리면서도 그를 위해 기도하며 죽어간 마리아 고레티 성녀가 있겠습니다. 물론 이 기적들은 우리 주위에서도 일어납니다. 

 

 

    어떤 분은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에 대한 용서도 성체성사로 다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으라고 남겨놓으신 이 신비 안에서가 아니라면 예수님께 대한 믿음에 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곧 삼위일체 하느님께로 향한 믿음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은 ‘성체’인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믿음을 가지려면 삼구의 욕망을 이기려는 목적으로 성체성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신학교 들어와서도, 물론 계속해서 죄를 짓습니다. 이 죄들 중에서 중대하다고 하는 죄를 짓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 방법으로 택한 것이 ‘성체조배’입니다. 성체성사의 효과는 성체조배를 통해 실현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말하는 성체조배는 말씀 묵상과 함께합니다. 묵상으로 제 안에서 성체로 사시는 예수님을 저 자신이 믿음으로 깨워낼 때 세속-육신-마귀의 욕망을 이길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체험을 한 이들은 모두, 말씀과 성체가 아니면 절대 이길 수 없음을 압니다. 이 때문에 성체성사에서 떠날 수 없게 되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된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